'민중 해방의 불꽃', '민중의 요람', '멈출 수 없는 변혁의 심장'. 각각 서울대 총학생회와 사회대 학생회, 인문대 학생회가 내건 슬로건입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대학교의 수많은 단과대, 학과마다 이같은 슬로건이 역사처럼 전해져 내려옵니다.
한국 대학의 학생운동 역사를 반영한 슬로건인데, 최근 서울대에서 이 같은 슬로건을 바꾸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22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선거에 단일 후보로 출마한 'homie(호미)' 선본은 "'진보의 요람'으로 불려왔던 서울대 사회대의 슬로건이 너무 오래됐다"며 "학생 투표로 슬로건을 새롭게 정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학우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호미 선본은 총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사전 선거운동'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선본이 기존 학생회 후보로 나선 선본과 달리 선본원을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공개 모집했는데, 이 기간이 선거운동 전이라는 이유로 서울대 총선관위가 징계를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호미 선본이 "선거운동과 선본원이라는 용어가 존재하려면 그 전에 선본이라는 조직부터 존재해야 한다"며 "그러나 homie(당시 임의단체)가 구성원 모집글을 올렸을 때에는 세칙상 명기된 선본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박하고 나서자 학생들 사이에서 "운동권 선관위가 비운동권 선본을 탄압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운동권 학생회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서울대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총학생회 선거에 나선 '퍼즐' 선본의 구성원이 기존 운동권 총학생회 구성원과 별반 달라지 않았다. 투표할 때 반대 투표가 아니라 아예 투표를 안 해야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는다"며 선거 무산을 촉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처럼 운동권에 비판적인 학내 여론이 곳곳에서 나타나자 지난 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곳곳에 "'민중해방의 불꽃(서울대 총학생회 슬로건)' 탈퇴하고 새학생회 시작하자"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붙기도 했습니다.
캠페인을 주도한 김은구 서울대 트루스포럼 대표는 "현재 총학생회가 80년대 운동권을 그대로 계승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기존의 학생회 조직과는 독립된 별도의 새 학생회를 만들어 교섭권을 획득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을 주도한 트루스포럼이 서울대 학생들을 대표하기에는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여론도 나옵니다. 트루스포럼은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서울대에서 탄생한 대학생 동아리로, 보수 우파적 색채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 중인 김 모(23) 씨는 "총학생회나 인문대·사회대 학생회가 수년 째 단독 입후보해 당선되거나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해 무산되는 등 운동권을 포함한 학생회 전반에 관심이 떨어지던 분위기가 트루스포럼 같은 극우세력이 '새학생회'를 외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학내에 커다란 반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퍼즐 선본 관계자는 트루스포럼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외부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저희 측은 대응하기보다는 우리 할 것을 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화여대에서는 지난해 11월 출마한 총학생회 선본이 정당과 유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면서 선거가 무효 처리됐습니다. 이 선본은 서울서부지법에 선거 무효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달 16일 신청이 인용돼 이달
하지만 당선 결정 이후에도 이들을 당선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익명 대자보가 부착되고, 학내 게시판에 '(운동)권아웃'이라는 말머리의 글이 릴레이로 게시되는 등 학생들의 반발이 일자 후보가 휴학 신청을 하면서 끝내 총학 구성이 불발된 바 있습니다.
[ 백길종 디지털뉴스부 기자 / 100road@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