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도 역사 속으로..."추억이 남네"

"고통과 슬픔이 많았지만 그래도 추억이 남네."

오늘(7일) 만난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주민 이모(68)씨는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그의 보금자리 백사마을이 재개발을 앞둬서입니다.

중계동 104번지에 있어 붙은 이름인 백사마을은 1960년대 도심 개발로 서울 각지에서 밀려난 철거민, 상경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불암산 자락에 모여들며 형성됐습니다.

이 마을은 오랜 기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가 2008년부터 재개발 논의가 시작됐으며, 아파트 설계계획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주민 간 긴 논의 끝에 올해 사업 시행계획이 인가됐습니다.

중계동 아파트 단지에서 불암산 쪽으로 걸어가자 나타난 마을 초입에는 '경축, 백사마을 사업시행인가 득'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펄럭거렸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저마다 백사마을에 처음 들어온 순간을 꺼내며 고단했던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이승호씨는 고향이 '전라도 광주'라며 17세였던 50년 전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상경한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요꼬 공장'(편직 공장)에서 니트를 짜는 동안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고, 동생은 단추 공장으로 출근했다. 가족들은 퇴근하면 밤마다 담장을 올리며 집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암산 나무를 끌어다 집을 짓고 직접 담장을 세워 지금의 판자촌을 형성했습니다. 수도가 없어 우물에서 물을 길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켰습니다.

이씨는 "이젠 뿔뿔이 흩어지고 없지만, 한때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추억이 있는 곳"이라며 "나이 70에 타향살이하려니 서운하고 섭섭하다"고 말했습니다.

1967년 용산구에서 백사마을로 와 연탄 가게를 운영한다는 최장수(67)씨는 "미련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재개발을 반겼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산비탈로 와 시멘트로 집을 지어 살았다"며 "젊었을 때가 그립지 못 산 건 그립지 않다"고 했습니다.

긴 재개발 논의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이미 대부분 떠나버린 동네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70대 강모씨는 1964년 종로에서 남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옮겨와 바닥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씨는 "한때는 2천명이 넘는 주민이 있었고 말이 통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모두 떠났다"며 "10여년 전부터 '갈아엎는다'고만 하니 남아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강씨 말대로 백사마을 집은 대부분 비어 있었습니다. 빈집임을 나타내는 빨간색 동그라미가 대문에 그려진 집이 대다수였습니다. 집이 아예 주저앉은 곳 주변엔 노란 안전선이 둘렸다. 빈집 사이 골목은 사람이 다닌 지 오래돼 덩굴로 막혀 있었습니다.

백사마을에 자주 오는 자원봉사자들도 이런 주거환경을 두고 재개발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보였습니다.

2013년부터 자원봉사를 한다는 이모(69)씨는 "집이 오래돼 단열이 안 되고, 연탄을 아무리 때도 웃풍이 들어 난로를 틀어야 했던 곳이니 재개발 승인이 다행"이라면서도 "생활이 어려워도 서로 돕고 보듬어주던 마을공동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백사마을 자리에는 총 2천437가구 규모로 평균 12층 이하, 최고 20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2025년 완공이 목표입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