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베이징특파원 부임을 앞두고 중국행 비행기표를 끊은 기자는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앞으로 중국 대륙의 소식을 전한다는 새로운 임무는 설레임의 대상이었지만 두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중국의 '3주 격리 과정'과 '항문검사 소문' 등은 주변 사람들까지 기자를 걱정하게 했다. 지금부터 기자가 직접 겪은 출국부터 3주 격리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본다.
지난해 10월 이후 인천과 베이징을 오가는 직항 항공편은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CA124 한편 뿐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다. 대한항공 등 국적기는 베이징 직항편이 없다. 하늘길이 좁아진 만큼 비행기표는 사전에 확보하는게 안전하다.
우선 한국에서 중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출국 48시간 전에 핵산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혈청 항체 검사를 받은 후 음성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참고로 검사는 주한 중국대사관이 지정한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 병원 리스트는 주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에 공지돼있다.
2월 5일 출국일. 이미 2차례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 판정을 받은 기자는 출국 3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터넷 후기에서 코로나 관련 각종 서류 작성 등으로 평소보다 탑승 수속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실제 보통 비행기 안에서 작성했던 세관신고서도 출국 전에 작성해야 했고 체온 등 건강 상태에 대한 서류에도 수차례 사인을 해야했다.
겨우 비행기에 탑승해 2시간을 비행한 후 중국 현지시간으로 오후 2시 20분경에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양쪽 코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핵산검사가 이뤄졌다. 따끔했지만 참을만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순조로웠다. 검사 이후 짐을 찾고 입국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탑승했다. 일부 승객의 체온 등에 문제가 있었는지 버스는 1시간 넘게 출발하지 않고 승객을 태운 채 대기했다. 겨우 시동을 걸고 2시간 가까이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베이징 북서쪽 외곽에 있는 창핑구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참고로 중국은 격리할 시설을 사전에 통보해주지 않는다. 버스가 도착하고 나서야 자기가 머물 숙소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버스는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대기했다. 탑승한지 5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화장실도 못가고 물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역당국이나 호텔 측에서 왜 승객들이 오랜 시간 버스에 갇혀있어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버스 승객들도 이에 대해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여기는 중국이다'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밤 12시경 격리시설인 호텔 방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서울에서 집을 나선지 15시간 만이었다.
격리시설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시설의 호텔이 배정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예 호텔이 아니라 시설이 열악한 기업 연수원에 격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자의 경우에는 최악도 최선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이 노후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호텔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있었으면 했던 냉장고는 없었고 방안 화장대 위의 전구 2개가 고장나있었다. 바닥 카페트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리 청결하지 않은 상태였다.(실제로 맨발로 다니면 금새 발바닥이 더러워졌다. 실내화를 격리물품으로 챙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기자의 방은 창문이 열리는 방이었지만 일부 방은 못으로 창문을 못열게 고정해놓기도 했다.
3주 동안 호텔방 안에만 갇혀있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좁을 방 내에서 계속 걷거나 맨손체조를 했다. 3주 동안 청소는 직접 해야 했지만 도구가 없어서 역부족이었다. 수건도 감염우려 등의 이유로 교체해주지 않았다.
사람마다 음식 취향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었다. 중국 향신료 등이 입에 맞지 않았는지 하루에 3번 배달되는 도시락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 포장김치, 참치캔, 김자반, 볶음고추장 등으로 버티기에 3주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수질도 양호하지 못했다. 샤워를 3번 정도 했을 때 한국에서 구입해간 샤워필터가 누렇게 변했다.
참고로 격리 비용은 자비 부담이다. 기자의 경우 1인당 7600위안(약 132만원)이었다.
중국 베이징에 오기 위해 총 9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먼저 출국 전에 핵산검사와 혈청검사를 받았고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핵산검사를 받았다.
3주간 격리 과정에서는 위챗(중국의 카카오톡)을 통해 매일 2차례 체온을 보고했다. 이와 별개로 의료진으로부터 6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의료진들이 검사를 할때마다 방으로 찾아왔다.
특히 이 중 2번은 공포(?)의 항문검사였다. 일단 과거 스토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지난 1월 갑자기 중국 정부가 항문검사라는 방법을 들고 나왔다. 수도 베이징까지 확진자가 나오자 정확도가 더 높다는 항문검사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일각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됐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 중국 정부가 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자 중국 국민들은 큰 반발이 없었다. 문제는 외국인 입국자들이었다.
한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의 경우 격리 기간 항문검사를 실시한다는 통보를 받자 주중 한국대사관에 항의를 했다. 이에 대사관이 베이징 방역당국과 협의를 통해 한국인의 경우 분변검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지만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다시 베이징 방역당국이 외국인에게도 항문검사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기자의 경우에도 당초 격리 기간 중 호텔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았다. "항문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니 바지를 벗고 엎드려 누워있으라"는 통보였다. 결국 대사관의 중재 끝에 의료진이 직접 항문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항문검사를 진행해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한번 항문검사를 할 때마다 2번씩 면봉을 이용해 항문에서 검체를 채취해야 했다.) 많은 한국인 입국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던 순간이었다.
3주 격리 과정이 있음에도 베이징행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은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기자가 타고 온 비행기의 한국인 탑승객은 대부분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었다. 3월 개강을 앞두고 3주 격리에도 불구하고 중국행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기자처럼 중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을 발벗고 도와줬다. 기자가 3주 격리를 무사히 마친 이유 중 하나다.
또 긍정적인 뉴스는 주중 한국대사관과 북경 한국인회, 코트라 중국지역본부가 베이징을 찾은 한국 국민들을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주중 한국대사관은 격리 기간 중 호텔을 집적 방문해 격리자들에게 한국 음식들을 전달해주는 등 격리자들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가 머문 호텔 운영진도 최대한 격리자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과일과 과자 등의 선물을 전달했고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에는 전통 쌀과자 등 선물을 돌리기도 했다. 특히 한국인 격리자가 많은 만큼 한국어 통역사를 활용하는 모습도 인상적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베이징 생활에 희망적인 요소가 있다. 격리 생활과 코로나 검사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이렇게 엄격한(?) 시스템이라면 해외에서 코로나19가 중국 땅으로 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묘한 기대다. 물론 방역을 앞세워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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