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를 마친 아파트를 실제 주인의 허락 없이 팔아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기·횡령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사기 유죄, 횡령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A 씨는 2013년 12월 아파트 매매 없이 명의만 빌려 달라는 B 씨의 부탁으로 B 씨 소유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2015년 8월 개인 빚을 갚기 위해 이 아파트를 제3자에게 1억 7천만 원에 매도한 뒤 소유권 이전 등기도 해줬습니다.
A 씨는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은 A 씨의 횡령 혐의와 9천만 원 상당의 사기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사기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으로 감형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B 씨에게 명의만 빌려 소유권 등기를 한 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무효인 만큼 이 약속을 위반해 아파트를 팔아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대법원도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의 위탁 관계를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A 씨가 횡령죄의 주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인정할 수 없는 만큼 횡령죄 자체가 성립할
이에 따라 재판부는 명의수탁자가 신탁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은 형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선언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김지영 기자 / gutjy@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