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서울 노량진 일대의 한 학원이 집합금지 명령으로 문이 닫혀 있다. 2020. 12. 27. 한주형기자 |
지난해 2월말부터 12월까지 수도권 학원들은 한 차례의 '휴원 강력 권고'와 두 차례의 집합금지명령에 따라 두 달 가까이 문을 닫아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차단하기 위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가 대면수업을 중단해야 했을 때 학원들도 이에 준하는 방역지침을 따라야 했다. 학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취해진 방역지침에 따른 영업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업종들 중 하나로 꼽힌다.
학원장들은 "학원은 어느 시설보다 방역을 철저히 관리한다"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사람이 방문하는 시설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식당·대중교통보다 엄격하게 통제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8일 매일경제는 수도권 학원장 3인에게 지난 1년간 코로나19 상황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방역조치로 인해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정부의 방역지침에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 "정부지원대출 3000만원, 빚만 남게 생겼다"
"작년 12월 이후 저희 학원은 수강생이 절반 가까이 이탈했습니다. 새로운 원생을 모집해야 하는데 솔직히 힘이 빠집니다. 광고비 들여서 힘들게 수강생을 모아봤자 언제 또 집합금지가 내려질지 모르니까요. 희망이 안 보입니다."
서울 강동구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학원을 연 지 올해로 꼭 1년째다. 지난 열두 달 중 월세를 낼 만큼 수익을 낸 것은 2020년 11월 한 번뿐이었다. 수강생이 늘어난다 싶으면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졌고,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졌다. A원장은 "소상공인 저금리대출로 받은 3000만원은 갚을 길이 안 보인다. 생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진지하게 폐업도 생각하고 있지만, 폐업하면 부채만 남게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한 달간의 집합금지명령은 A원장에게 사실상 휴업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원격수업은 '그림의 떡'이었다. A원장은 "음악 수업을 할 때는 리듬을 가르치고, 악보를 가르치고, 곡을 가르쳐야 하는데 원격수업에선 손과 입과 소리가 따로 놀았다"며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원격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또 있었다. A원장은 "원격수업을 도전해봤으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학원에서 드럼을 배우려는 학생이 집에 드럼이 있을 리 없고, 있다 한들 집에선 소음 때문에 연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학원 운영이 제한되는 동안 연습실 대여공간에서 개인 레슨을 받는 학생만 늘었다"고 했다.
학원 운영상 중요한 시기마다 A원장은 '개점휴업'을 맞았다. 수시 실기시험을 앞둔 8월말과 정시 실기시험을 앞둔 12월에 각각 학원을 대상으로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졌다. A원장은 "대입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수요가 있는 9월과 12월에 문을 닫으라는 건 저희 예체능 학원에겐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지난 4일부터 학원 운영이 제한적으로 가능해졌지만 A원장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 했다. '동시간대 교습인원 9인 이하'라는 조건을 납득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A원장은 "저희 학원은 면적이 60평이다. 60평 학원에 9명이 수업하는 것과 10평짜리 교습소에서 9명이 수업하는 게 같느냐"고 물었다.
A원장에게 방역은 일상이다. 정부는 학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 학원 이름과 감염경로를 공개하고 있다. A원장은 "사람이 들고 난 자리는 무조건 소독약으로 닦는다. 손끝이 다 일어날 정도로 매일 소독약을 만지고 있다"며 "저희도 생계를 망치고 싶지 않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방역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학원 운영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은 시시때때로 내려오고 있다. A원장은 최근 '비말이 분비되는 보컬·관악기 등 수업은 금지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방역점검을 나오면 언제든 이에 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붙이라'는 공문도 내려왔다. 간혹 학원에서 방역수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지 담당 공무원이 점검도 나왔다. 현장의견 수렴은 한 차례도 없었다.
◆ "언제 또 학원영업이 제한될지 늘 불안하다"
"면적에 관계없이 학원 한 곳당 동시간대 9명 입장할 수 있다는 지침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났어요. 그래도 지침인데 지켜야죠. 12월 한 달간 학생이 40%가량 줄었어요. '몇 달 뒤엔 좋아질 거야. 열심히 하면 아이들이 다시 올 거야.' 이런 희망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중고등학생 대상 수학학원을 7년째 운영 중인 B원장은 코로나19 한파에 결국 폐업하는 주변 학원장들 소식이 남일 같지가 않다. B원장은 "1년 전에 비해 매출은 이미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걸 못 버티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버티는 게 살아남는 것이라는 심정으로 계속 버티고만 있다"고 말했다.
담담한 말과 달리 B원장은 월급 없는 생활을 몇 달째 이어가고 있다. 그는 "매출은 줄었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비는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변함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사들 월급을 지키기 위해선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수도권 학원에 대한 운영 제한은 총 3차례 취해졌다. 정부는 지난 2월말 휴원을 '강력 권고'한 이후 8월 말과 12월엔 각각 2주, 4주간 집합금지명령을 내렸다. B원장이 운영하는 학원은 그때마다 수강생이 줄었다. 2019년 12월 100여명이었던 수강생은 지난해 2월말 '강력 권고' 이후 80여명으로 줄고, 8월말 집합금지 당시엔 70명대로, 12월엔 40명대로 줄었다. 중간중간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졌고 방역지침이 내려왔다.
B원장은 "정부가 '학교도 비대면 수업을 한다. 방역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원도 대면수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저희도 아이들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음에도 학원을 닫아야 하는 게 억울했지만 정부 지침이니까 말없이 따랐다"고 했다. 그는 "3번을 참았지만 여전히 끝이 안 보인다"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우리도 그런 심정이다. 왜 우리가 코로나19 총알받이가 돼야 하느냐"고 했다.
학원에 대한 방역지침이 완화되더라도 B원장은 당장 사정이 나아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그는 "과연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학원에 돌아올지 확신이 없다. 그동안 학원을 대신한 개인과외를 갑자기 끊을 것 같지도 않다"며 "이런 상황이 6개월 내지 1년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 "언제 또다시 확진자가 늘고 학원 영업이 제한될지 늘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B원장은 주변에서 학원을 정리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플랜 B'를 고민한다. 그러나 결론은 번번이 '이 상황을 버텨내겠다'로 이어진다.
"저희 학원가 사람들은 공교육과 함께한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학교에서 다 채워주지 못한 공부를 보충해주고, 학교에선 잠만 자던 아이들도 학원에 와서 성적을 올리고 성취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자 입장에서 정말 뿌듯합니다. 학원은 자영업자인 동시에 교육기관입니다. 그간의 방역조치는 우리가 '사교육'이기 때문에 탄압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 "현장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
"한때 변호사였던 대통령님께 묻고 싶어요. 정부가 방역을 이유로 자영업자들의 재산권을 제한하면서 아무런 생계 보상 없이 무조건 '희생해라' '협조해라' 하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법을 공부하셨다면 이게 헌법 침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천 부평구에서 성인 대상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C원장은 "작년 2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학원들은 정부에 협조하며 방역지침을 따랐다"며 "지금은 무언가 달라진 게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19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했다. 학원은 지난 1년간 무얼 한 건지 허탈감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C원장은 수도권 학원가 분위기는 이미 봉기 발생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원가 민심은 이제 '협조'를 운운할 단계를 넘어섰다. 당장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며 "그동안 정부는 '운영 제한으로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송구하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사람 간 접촉 최소화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매번 반복했다. 이제 우리도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약 4주간 이어진 집합금지명령에 이어 '9인 이하 영업 허용' 지침이 내려온 데 대해 C원장은 "탁상행정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학습권'이 아니라 '돌봄 기능'을 언급하며 동시간대 9명 이하 영업은 허용한다고 했다"며 "그러나 어떠한 근거로 9명이라는 상한선을 정한 것인지 명확한 설명은 없다"고 말했다.
C원장을 더 답답하게 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 한다는 점이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상황에서 학원과 교습소엔 3단계에 해당하는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졌던 때를 C원장은 잊지 못 한다. 집합금지에 따라 당장 학원 문을 닫아야 하는 생계가 걸린 문제였으나 정부 기관에선 그저 지침을 따르라고만 했다.
"예고했던 지침과 다른 조치가 취해졌기에 설명을 듣고 싶었어요. 그러나 교육청에 문의해도 '모른다'고 했어요. 보건복지부에 전화해도 '모른다'고, 질병관리청에서도 '모른다'고 했어요. 저와 연락이 닿은 공무원들은 '우리도 잘 모르고, 권한도 없는데, 왜 우리한테 뭐라고 하느냐'고 푸념했어요. 방역만 있고,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방역지침과 관련한 소통은 일방적이었다. C원장은 "그래도 방역지침에 대한 현장 피드백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확진자가 나오면 책임을 묻겠다, 불시에 점검하겠다, 이런 협박성 안내만 내려올 뿐이다. 어떻게 현장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누가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냐"고 했다.
C원장이 운영하는 학원은 80평 규모다. 2019년 12월 4000만원에 이
[문광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