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권시장에 상장해 투자금을 모은 후 고의로 상장폐지를 노렸다는 의혹을 받는 중국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중단됐다. 상장폐지 후 현지로 돌아간 피의자들 신원 파악을 위한 중국 당국의 협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시장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불투명한 회계 문제 등으로 상장폐지 된 경우는 무려 86%에 달한다.
7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완리인터내셔널홀딩스(완리)' 임원진들에 대한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 관련 기소중지 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수사가 중단된 것이다.
완리는 외벽타일을 만드는 홍콩 소재 지주회사로 중국에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 3곳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코스닥에 상장한 완리는 2017년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2018년 5월 상장폐지 됐다. 이후 완리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돼 국내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인터폴을 통해 중국 현지 당국에 피의자 소재 등을 의뢰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경찰은 피의자들이 한국에 입국 시 알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소에 협조 요청을 했다. 완리 임원진들은 상장폐지 이후 중국 현지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져 있다. 현지 협조가 어려워 피의자 추적 수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완리가 고의로 회계 오류를 범해 상장폐지를 노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매년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누락하거나 외부감사인에게 협조하지 않아 감사의견 거절을 받는 방식이다. 이후 완리의 주가는 폭락을 했지만 경영진들은 이미 보유주식을 모두 판매해버린 뒤였다.
김정국 완리 투자자 대표는 "완리의 경영진들은 상장이 폐지되기 전 주식을 고가에 팔고 이후 중국으로 도망가버렸다"며 "시점에 따라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만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말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거래소는 지난 2007년부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총 39곳의 해외 기업을 상장시켰지만 이중 36%인 14곳의 기업(코스피 5곳·코스닥 9곳)이 상장페지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상장폐지된 14곳 중 대부분은 중국 기업으로 12곳에 달한다. 상장폐지 사유는 회계 불투명성 등 경영상 문제로 투자자 피해 규모만 약 39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추가적인 상장폐지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감사의견 한정 의견으로 매매 거래 중지 조치가 된 중국 기업 'GRT'도 상장폐지의 위험성이 있다. 거래소는 GRT의 이의신청서를 접수한 후 내년 11월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했지만 투자자들 걱정은 여전하다. GRT 주주들은 임원 등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다. 외국 기업이 국내 시장에 상장하기 전 자격요건 등을 철저히 심사하는 사전 '허들'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상시 감시를 통해 특정 기업의 위법성이 발견될 경우 즉각
금융피해자연대 자문을 맡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는 "상장한지 2년 만에 폐지되는 중국 기업들도 있는 걸 보면 금융당국이 상장 당시 제대로 심사를 했는지 의심된다"며 "상장 과정, 조건 등을 면밀히 살펴 봐 피해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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