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하세요?-2]
* 기자라고 말을 다 잘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요. 소재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재밌어할 만 한것, '로또'입니다. 로또는 사행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희노애락이 보입니다. '당첨금'에 초첨을 맞추면 세금·재테크·통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 지난달 3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변 로또 판매점 앞에 늘어선 긴 줄 모습 |
새해를 맞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마들역 입구 근처에서부터 100여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쭉 서 있었다. "어머, 이게 무슨 줄이에요?" 지나가는 행인이 주변을 서성이는 기자에게 물었다. "로또요."
'설마 코로나에, 강추위에 로또를 사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겠어?'란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새해엔 운수대통'이란 희망을 안고 온 사람들에게 영하 10도의 추위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바로 직전 주말 34억3000만원을 거머쥔 로또 1등 당첨자가 해당 판매점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더욱 몰린 듯 했다. 지금까지 로또 1등 당첨자를 43번 배출해 이른바 '로또 명당'으로 통하는 판매점을 찾아가 봤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이 더 길어진 것은 연말 연초 효과가 컸다. 판매점 주인은 "보통 연말 연초면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편"이라며 "평소 대비 30% 가량 판매량이 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근에선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이 한창이었다. 경찰은 "CCTV로 단속을 해도 불법주차를 한 차량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며 "대부분 로또를 사러 오는 이들의 차로, 연초엔 더 하다"고 말했다.
↑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로또 판매점 모습 |
막 구매를 하고 나온 60대 A씨는 "당첨되면 아들 빚이라도 갚아줘야지…(웃음)"라며 행여나 로또 용지를 잃어버릴까봐 지갑 안에 고이 챙겨 넣었다. 종무식을 하고 왔다는 직장인 B씨 역시 "지난주는 꽝이었지만 새해를 맞아 좋은 기운을 담으면 다 잘 될 것 같다"고 했다.
판매점에선 전날 미리 자동으로 번호를 뽑아놓은 용지를 바로 살 수 있게 한 줄과 방문 당일 번호를 자동으로 뽑거나 수동으로 작성하려는 이들을 위한 줄로 구분해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줄을 섰다. 강추위에 30~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함에도 개의치 않았다.
판매점 주인은 "아무래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정성을 들여야 당첨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그렇게 신년 운과 희망, 정성 등을 쌓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판매점 밖에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 아빠들과 20~30대의 젊은 커플도 눈에 띄었다. 로또하면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하던 것이란 인식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매주 로또를 구매한다는 30대 C씨는 당첨이 되면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냐고 묻자 "내 집을 마련하는데 보태고 싶다"고 했고, 인천에서부터 왔다는 한 남성은 "주식에 투자하려고 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소위 '영끌'해서 집을 사고, 주식 투자에 적극적인 젊은 층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 서울 3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변 로또 판매점 앞에 늘어선 긴 줄 모습 |
'로또로 인생역전'이란 말엔 회의적인 반응 역시 있었다. 자영업을 하는 E씨는 "요즘 서울 집값 좀 봐라. 10억 있어도 집 한채를 살까 말까인데…"라며 "로또로 인생역전을 이루기엔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한탄했다.
로또는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더 잘 팔리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 로또 명당 기운을 받아 새해를 맞이하려는 이들은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더욱 늘어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26일 판매된 943회차 로또 판매 금액은 약 1001억원으로 집계됐다. 주간 판매액이 1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2011년 10월(1268억원) 이후 9년여 만이다.
2013년까지 2조원대에 머물렀던 로또 판매액은 불황이 깊어진 2014년 3조원대로 늘어난 이후 줄곧 증가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byd@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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