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나라에서 지원도 안 받고, 자기 돈 털어서 봉사하시는 곳인데, 요새는 정말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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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위치한 '평화의 집'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만난 김 모 할머니가 취재진에게 연신 하소연했습니다. 백사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평화의 집. 임춘식 원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김 모 할머니와 같은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연탄과 같은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임 원장의 사비와 외부 기부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한계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로 외부 기부금이 뚝 끊기고, 자원봉사자들도 발길을 끊으면서 심각한 운영난에 처하게 된 겁니다. 한때 300명에 달했던 평화의 집 방문 어르신들도 이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원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여기 어르신들이 매일 점심 정도는 드실텐데...” 김 모 할머니가 긴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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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집 제공 |
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56.5%입니다. 전국에서 29번째로 높은 수치인데, 충청남도 청양군(17.6%)의 3배가 넘는 수치죠.(2019년 기준)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을 통해 알아본 서울 노원구의 2019년 노인 예산은 202,969백만 원, 충남 청양군은 36,587백만 원이었는데요. 이를 독거노인 수로 나눠, 독거노인 1인당 예산을 구해보면 서울 노원이 12.5백만 원, 충남 청양은 14.9백만 원으로 노원구가 20% 가량 적었습니다. 도와줘야 하는 독거노인은 훨씬 많은데, 예산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죠.
지금까지 독거노인들의 빈곤 대책과 복지의 주안점은 농·어촌에 많이 집중됐었죠. 아무래도 도시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고 인프라가 낙후된 시골에 관심이 쏠렸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럼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걸까요? 단지 서울 노원구가 유난히 어려운 걸까요? MBN 데이터취재팀은 KDX한국데이터거래소와 함께 전국 기초자치단체 228곳의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전체적인 복지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노인 관련 복지 예산과, 복지 인프라 수준을 볼 수 있는 노인돌봄 생활지원사, 노인 복지시설 수에 빈곤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을 종합했는데요. 각 지역의 ⓵독거노인 1인당 노인 복지 예산 ⓶생활지원사 1인당 독거노인 수 ⓷노인복지시설 1기관당 독거노인 수 ⓸독거노인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을 표준점수로 변환해 합산했습니다. 그리고 20%씩 구간을 나눠 <매우 취약/ 취약/ 보통/ 양호/ 매우 양호> 5단계로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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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독거노인 취약 지도’입니다. 언뜻 녹색(양호, 매우 양호)가 많아 보이는데... 중간중간 빨간색 타일(매우 취약)이 밀집된 지역들이 보이시나요. 자세히 보시면 서울과 인천, 대구, 부산, 광주라는 걸 알아차리실 겁니다. 서울과 광역시들에 ‘매우 취약’ 지역들이 몰려있는 거죠.
가장 독거노인 취약도가 높은 지역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대구광역시 남구였습니다. 복지시설 1기관당 독거노인 수는 70.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비율도 72.6%로 전국에서 3번째로 높았습니다. 하지만 독거노인 1인당 복지예산은 11.3백만 원으로 하위 20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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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서울 종로구로 이곳은 생활지원사 1인당 독거노인 수(126.2명)가 전국에서 3번째로 많았고,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비율(59.1%/21위), 독거노인 1인당 예산(11.9백만 원/34위), 복지시설 1기관당 독거노인 수(47.8명/24위) 등 전 분야에서 고른(?) 점수를 받았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자치구들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실제로 특별/광역자치단체(세종, 제주 포함)의 59.2%가 매우 취약에 속했고, 28.9%가 취약에 속하는 등 90% 가까이 취약 단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중소도시와 농어촌의 경우는 67.2%가 양호와 매우 양호에 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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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당연히 각 지역 독거노인들의 삶의 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전국 독거노인 2,563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 물어봤는데요. 농어촌(읍, 면)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은 불만족한다는 비율이 39.2%였지만 도시(동)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은 45.0%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은 “복지망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촘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촘촘한 망 사이에는 엄청난 크레바스가 있다”며 “복지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을수록 한번 해당 시스템에서 외면되기 시작하면 다시 시스템에 편입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지 감시망에서 벗어난 도시 독거노인들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한 것이죠.
많은 전문가들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독거노인들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이를 토대로 각 지역별로 맞춤형 독거노인 복지 정책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독거노인은 총 1,532,847명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인구 3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은 991,920명에 달하죠. 65%가 대도시에 사는 셈입니다. 우리 복지의 안전망을 하루빨리 도심 빌딩숲 속으로 넓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MBN데이터취재팀은 KDX한국데이터거래소를 통해서 전국 독거노인 취약 지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전국 독거노인 취약지도 바로가기(클릭)
[민경영 기자 / business@mbn.co.kr]
인터랙티브맵: 김미진(KD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