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남은 병상은 48개뿐이다. 매일 1000명 넘게 확진자가 나오다보니 (병원) 현장에서는 피가 마른다."
대한민국에는 코로나 19 백신이 없다. 확진자는 매일 1000명씩 쏟아진다. 그런데 19일 기준 전국에 남은 병상은 48개에 불과하다. 의료계에서는 '병상 대란'이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 본다. 게다가 1년 가까이 이어진 격무로 의료진은 탈진 상태다. 세계가 칭송한 K-방역의 성과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병상이 부족하다보니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위해 입원해있던 암·심장질환 등 중환자들을 내보내야 할 판이다. 누구를 먼저 치료할 것인가. 눈물겨운 '병상 전쟁'이다. 입원을 기다리거나 요양병원에서 확진 후 다른병원으로 전원을 기다리던 중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차라리 (병상이 남아 있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게) 빨리 코로나 19에 걸리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 정부, 대형병원에 첫 병상확보 행정명령…"암·심장병 환자 내보낼 판"
병상확보가 여의치 않자 정부는 19일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학병원 등을 대상으로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렸다. 코로나 19가 확산된 이후 정부가 민간 병원에 병상확보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의료계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전날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 확보 명령'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중수본은 공문에서 "상급종합병원 및 국립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을 신속히 확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은 정부에서 허가받은 병상 수의 최소 1%, 국립대병원은 허가 병상 수의 1% 이상을 각각 확보해 중증환자를 치료할 전담 병상으로 확보해야 한다. '빅5'로 불리는 주요 종합병원과 약 40곳의 상급종합병원에서 병상을 확보하면 약 300여 개의 중증환자 치료병상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해당 병원에는 향후 의료기관 평가, 인력 활용 등에 있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 병원도 병상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3차병원에서 암이나 심장 수술 등 큰 수술을 해도 하루나 늦어도 사흘이면 퇴원을 시킨다. 그만큼 위중한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환자가 완치되기까지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다른 질환을 앓는 중증 환자들을 작은 병원이나 정부가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공사중인 컨테이너 임시병상 등으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대유행이 올 것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에서 정부의 병상, 인력 준비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중환자 병상을 늘리려고 해도 현실적 여건상 어렵다"면서 "확진자가 중증 상태로 가지 않도록 조기에 진단하고, 진료할 수 있는 체계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병원에서 병상을 확보해 코로나 환자를 분산수용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에 하나 메르스 때처럼 병원에서 감염이 확산될 경우 도미노로 의료붕괴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의료진은 "우리 같은 상급병원들은 검진이나 수술을 받으려고 환자들이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씩 기다리는데 그 분들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단순히 병상만 확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의료진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다들 너무 지쳐있어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중증 환자 입원 병상 48개뿐…입원 기다리다 사망도
19일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당장 입원할 수 있는 중증환자 치료 병상은 전국 573개 가운데 48개(8.4%) 뿐이다. 병상 숫자로만 보면 전날(45개)보다 3개 늘었지만 확진자가 1000명씩 나오는 상황이어서 언제 병상이 동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날 기준으로 위중증 환자를 즉시 치료할 수 있는 가용 병상은 서울 8개, 경기 4개, 인천 1개 등 13개이다.
특히 이날 0시 기준으로 103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충북에서는 중환자를 치료할 병상이 당장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대전, 전북, 전남 등도 병상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이다. 중증 단계에서 상태가 호전됐거나 혹은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준-중환자'용 치료 병상은 현재 12개만 남아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중증 환자는 연일 최대치다. 위중증 환자는 지난 2일(101명) 100명 선을 넘어선 이후 빠르게 증가하며 지난 15일에는 205명까지 치솟았다. 이후 226명→242명→246명→275명 등으로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를 받다 숨지거나 사후 확진된 사망자 역시 지난 15일부터 이날까지 닷새 연속(13명→12명→22명→11명→14명) 두 자릿수를 기록중이다. 평소 지병(기저질환)을 앓고 있거나 고령층인 '고위험군' 환자는 특히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미 자택에서 입원 치료를 기다리며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이 전날 배포한 '코로나19 격리병상 입원, 전원 대기 중 사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날 0시 기준으로 자택에서 격리병상 입원을 대기하거나 요양병원에서 격리병상 전원을 대기하던 중 사망한 환자는 총 8명이다. 지난 2∼3월 대구·경북 중심의 '1차 대유행' 당시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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