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건 재판부는 전씨의 범죄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도 실형이나 벌금형 대신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5·18 당사자와 유가족은 물론 광주시민들과 정치권은 너무 기계적으로 판단해 죄의 무게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재판부는 5·18 민주화운동 자체를 다투는 재판이 아닌 점, 추징금을 내고 있고 고령인 전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해도 실효성이 적은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사자명예훼손 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침해받은 법익의 정도를 기준으로 형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어제(30일) 열린 전씨의 1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은 지금까지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성찰이나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고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대법원 양형 기준을 참고했을 때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산 자에 대한 범행보다 가벼워) 감경요소에 해당하고 조비오 신부가 사망한 뒤 회고록이 출간돼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할 수 없다면 처벌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벌금형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적정한 방법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벌금형이 선고되면 노역장 유치 집행을 통해 벌금 납부를 강제하는데 70세 이상은 관할 지방검찰청의 지휘로 형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며 "더욱이 사자명예훼손죄 벌금형 상한이 500만 원인데 강제집행을 한다 해도 이 벌금보다 훨씬 많은 추징금을 납부해야 하는 피고인에게 실효적인 처벌 수단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
전씨에 대한 금전적인 제재는 형사소송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회고록과 관련해 진행 중인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명예훼손 재판에서도 명예훼손 정도나 합의나 반성이 없는 경우 실형 선고를 한 사례가 많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조비오 신부가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자 지역의 원로, 교황청이 덕망 있는 고위 성직자들에게 내리는 몬시뇰 명예 칭호를 받은 사제로서 존경받아온 점을 고려하면 피해 정도가 크지 않다는 표현 역시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전씨가 "5·18 기간 내내 헬기 사격은 없었다.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한 것은 조 신부는 물론 천주교 사제들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재판이 열리기 전 입장발표회를 열고 "고(故) 조비오 몬시뇰에 대한 전씨의 명예훼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5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전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고 마음을 다해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재판 당일 법원을 찾은 5·18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은 집행유예 판결을 접하고 "원통하다. 아들, 남편을 잃은 엄마의 마음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느냐"며 한참을 통곡하고 땅을 쳤습니다.
정치권도 전두환 세력의 헬기 사격을 인정한 판결 취지를 환영하면서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정의당 광주시당, 이용섭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등은 각각 성명을 통해 반성과 사죄하지 않는 전두환을 중죄로 다스리고 5·18 진상규명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