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를 둘러싼 후폭풍이 일파만파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내들며 윤석열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고, 국민의힘은 "헌정 문란" "법치 유린"이라며 추 장관 경질 요구로 맞서고 있다.
징계 당사자인 윤 총장은 25일 밤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며 집행정지신청을 냈고, 일선 검사들은 추 장관 조치에 반발해 7년 만에 집단행동에 돌입할 태세다.
추 장관이 내놓은 윤 총장의 6개 징계사유 중 그나마 새로운 것은 주요사건 재판부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 정도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올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을 통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 사건 등 주요사건 재판부를 불법사찰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재판부의 주요 정치적 사건 판결내용, 진보성향 법관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세평, 개인취미, 물의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이 담긴 자료를 윤 총장이 보고받고 대검 반부패강력부로 넘기도록 지시한 것은 명백한 불법사찰로 직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조직적 사찰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며 "시대착오적이고 위험천만한 일이 검찰 내부에 여전히 잔존하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뿌리를 뽑겠다"고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재판부 불법사찰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행정부 소속 검찰이 사법부를 불법 사찰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용납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개인의 약점이나 공격 소지에 해당할 수 있는 민감정보를 수집해 유통하는 것은 과거 정보기관에서 하던 전형적인 불법사찰 행위"라며 "이걸로 양승태 대법원장, 국정원, 보안사, 총리실이 다 처벌받았다"고 했다.
반면 윤 총장측은 "공판검사가 인터넷과 법조인열람서적을 통해 파악한 재판부 참고자료일 뿐"이라라며 "사찰은 심한 비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올 2월 대검 수사정보2담당관 재직시 문건을 작성한 성상욱 고양지청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정상적인 업무수행이었다. 징계청구 사유가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성 부장검사는 "마치 미행이나 뒷조사로 해당 자료를 만든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그런데도 법무부를 비롯한 누구도 문건 작성 책임자인 내게 문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거나 문의한 사실이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사나 변호사가 사건 승소를 위해 재판부에 대한 정보와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일상적인 재판 준비 업무 중 하나라는 것이 법조계의 다수 견해다.
게다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등에서 만든 보고서를 받은 사람도 친정부 성향인 당시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만약 추 장관 발표대로 재판부에 대한 불법사찰 문건이 맞다면 추 장관 심복으로 불리는 심 국장이 여태껏 이 문건을 방치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추 장관은 윤 총장의 불법사찰혐의를 먼저 발표해놓고 뒤늦게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도 벌였다.
추 장관과 여당이 이처럼 구체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의혹에 기대 '재판부 사찰혐의'에 화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뭘까?
법조계에선 "정권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수사나 재판을 염두에 두고 검찰과 법원을 이간질시키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 '불법사찰' 프레임으로 윤 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마치 증거가 아닌 판사성향을 분석해 유죄를 받아내는 것처럼 보이게 해 법원 반발을 부추김으로써 윤 총장을 흠집내고 정권 관련 수사나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려는 술수라는 것이다.
이같은 여권의 판단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진보성향 판사들이 사법부 주류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도 나름 영향을 미쳤을 법 하다.
게다가 법원내 상당수 판사들 사이에선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지휘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의혹 수사를 놓고 "검찰이 정권 눈치를 보면서 무차별적인 적폐수사를 벌여 사법부를 망가뜨렸다"는 불만이 아직도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의 재판부 불법사찰의혹까지 맞물리게 되면, 법원과 검찰간 대립각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윤 총장의 직무집행정지소송의 향배가 우려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주장이 맞서는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은 두 사람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원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다시 세우느냐, 무너뜨리냐는 중대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추 장관을 향해 "과연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를 할 만한 일인지, 지금이 이럴 때인지,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 때문이다.
법원으로선 검찰에 대한 앙금과 상처가 남아 있겠지만 이번 만큼은 구원이나 정치 논리에 휘둘려 섣부른 결정을 내려선 안된다.
사냥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개 목줄을 풀고 공격하도록 사주한 주인보다 개에게 더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추 장관의 조치는 월성원전1호기 경제성평가조작·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라임및 옵티머스 펀드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수사를 덮고 검찰을 통제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일선 평검사들이 "윤 총장의 직무배제를 철회하라"며 잇따라 집단성명을 발표하고 나선 것도 이
윤 총장도 "개인의 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키며 법적 대응하겠다"고 했다.
법원이 아직까지 명확한 증거도 없는 법무부의 발표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양심과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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