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얼마 전 호미 한 자루를 받았다. 미국 아마존 쇼핑몰에서 히트한 영주대장간 호미다. 핸드폰 케이스로 유명한 슈피겐코리아는 지난 3분기 매출 1443억원, 영업이익 409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시대 시장전망치를 44.8% 가량 상회하는 실적이다. 글로벌 시장을 놓고 아마존 판매에 집중한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전략 덕분이다.
아마존이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를 통해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Cross-Border E-Commerce)란 전자상거래를 통해 국경을 넘어선 판매자와 소비자의 연결을 의미한다.
아마존과 11번가의 결합으로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전자제품을 11번가에서 보다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대로 '영주대장간 호미'나 '슈피겐 핸드폰케이스'처럼 한국 제품을 아마존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게 용이해진다.
상품가격 뿐 아니라 고객소통, 결제, 반품, 환불, 배송 등에 있어 매끄러운(Seamless) 판매 및 소비경험을 제공하는 게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쟁력이다.
유통업계의 관심사는 아마존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아마존이 한국시장을 보는 관점을 좀 더 글로벌한 시각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마존은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서 알리바바와 치열한 영토싸움을 벌이고 있다. 세계 10대 이커머스 시장 중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이커머스를 점령하지 못한 곳은 한국(5위), 러시아(10위) 뿐이다.
중국은 2019년 기준 이커머스 거래액이 1조9340억 달러(약 2153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알리바바그룹 산하 이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는 월간 6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며 중국 내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아마존은 2004년 중국에 진출했지만 시장 점유율이 1% 미만이다.
한국은 아마존이 글로벌 이커머스 경쟁에서 알리바바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남은 최대 격전장이다. 한국의 이커머스 거래액은 2019년 1030억달러(114조원)이다. 하지만 전년대비 성장률이 18%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 중이다. 뛰어난 통신 및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올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급성장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바바 그룹은 최근 웨비나 형식으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알리바바 코리아데이 2020'을 개최했다.
알리바바는 이 자리에서 '플랫폼'의 힘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알리바바의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플랫폼 티몰글로벌 등에서 판매되는 약 2만5000개의 브랜드 중 한국 브랜드는 5000개로 20% 를 차지한다.
아마존은 한국서 글로벌 셀링팀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사업도 활발하다. AWS사업의 파트너가 SK텔레콤이다. 아마존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 사업 파트너로 SK텔레콤의 자회사 11번가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아마존의 쿠팡 인수설도 나왔지만 쿠팡의 최대투자자인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아마존과 SK텔레콤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만 놓고 보면 11번가의 존재감은 다소 떨어진다는 게 시장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아마존이 11번가 보다는 모기업 SK텔레콤과의 시너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유통 전문가들은 SK텔레콤과 아마존이 내년 본격적인 협력에 나서면서 한국 시장을 디딤돌 삼아 결국은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로모니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은 350억달러 규모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을 놓고 알리바바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마존의 입장에서도 동남아는 놓치고 싶지 않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다.
물류전문가인 민정웅 인하대 교수는 "한국은 물류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면서 "아마존이 11번가를 통해 한국을 물류기지 삼아 동남아 유통 플랫폼 구축에 나설수 있다"고 진단했다.
알리바바는 이미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동남아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라자다를 인수한 상황이다. 반격에 나선 아마존이 SK텔레콤과 한국을 기반으로 동남아 진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통해 이커머스를 넘어서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구축도 예상된다.
민 교수는 "5G 등 기술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신 냉전'이라 불릴정도로 갈등을 빚으며 한국에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이 역시 소리없이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남아에도 싱가포르의 쇼피(Shopee)와 알리바바가 인수한 라자다(Lazada)와 같은 이커머스 강자들이 버티고 있다. SK플래닛은 동남아에서 11번과와 같은 오픈마켓 모델을 시도했지만 현지 경쟁을 뚫지 못하고 2017년 인도네시아, 2018년엔 태국, 말레이시아 사업을 정리한 아픈 경험도 있다.독자 진출의 한계를 경험한 SK텔레콤은 현 단계에선 동남아 진출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선 SK텔레콤-아마존 연합이 기존 아마존 물건을 11번가에서 판매하는 데 그친다면 '찾잔 속 태풍'이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실제 해외직구 시장은 약 3조원에 불과해 전체 국내 이커머스 시장 150조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11번가 상장을 위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을 끌어드렸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이미 물류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쿠팡이 버티고 있고 플랫폼 사업자 지위를 보유한 네이버가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롯데와 신세계 등 오프라인 유통강자들도 온라인을 강화하는 만큼 아무리 11번가-아마존 연합이라도 한국시장만 가지고는 파급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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