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기 싫다기보다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대면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을 감당하기 싫어서 저처럼 출산을 포기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직장인 김모(30)씨는 최근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례를 보면서 '비혼 출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씨처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혼 출산'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른바 '정상가족' 체계에 편입돼 개인의 삶을 희생하기는 싫어 출산을 원치 않았으나, 사유리의 사례를 계기로 대안을 고민해보게 됐다고 말합니다.
오늘(22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만 20∼39세 6천3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애전망 인식조사를 보면, 청년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 갖기'를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정이 아닌 노동 중심의 개인화된 삶을 기획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선 결혼해서 많이 낳으라'는 정책 메시지는 효력이 없다고 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청년기 삶의 과업 중요도 조사에서는 남녀 모두 '일'과 '개인생활'을 '파트너십'이나 '자녀'보다 중요시했습니다.
'일'에 부여한 점수는 여성이 36.2점, 남성이 35.9점이었고 '개인생활'은 각각 29.5점과 26.6점으로 역시 여성이 더 높았습니다. 반면 '파트너십'(여성 21.7점·남성 23.3점)과 '자녀'(여성 12.6점·남성 14.1점) 항목은 남성의 중요도 점수가 더 높았습니다.
'원하는 일·직업을 유지하는 데 결혼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응답한 비율도 여성 50%, 남성 24.8%로 차이가 컸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일과 삶을 중요시하는 청년 여성들은 가정을 꾸릴 때의 위험을 파트너(배우자)가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는다면 자녀 갖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라고 봤습니다.
청년 여성들은 출산의 전제조건으로 '파트너의 양육 참여'(78.6%), '공평한 가사 분담'(73.7%), '파트너의 출산휴가·육아휴직'(69.2%)을 꼽았습니다.
반면 남성들은 '나보다 나은 삶을 물려줌'(75.4%), '나의 경제적 준비'(73%), '나의 안정적인 일'(71.2%) 등 자신의 경제적 안정성과 관련된 조건을 중요시했습니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와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는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며 "결혼제도로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가 비혼과 저출산 모두의 원인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하지 않고도 자율적인 삶을 누리면서 아이를 갖는 사유리의 사례는 하나의 대안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비혼주의자인 직장인 박모(32)씨는 "피붙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는 일이 한국에서 얼마나 따가운 시선을 받는지 알기 때문에 포기했었다"며 "사유리의 용기 있는 결정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원생 양모(25)씨는 "꼭 부모가 둘이어야만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은 그저 편견"이라며 "사유리 사례를 계기로 다양한 가족 형태에서도 원만한 출산과 육아가 가능하도록 국가의 지원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비혼 동거와 비혼 출산 등 대안적 가족 형태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는 분위기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에 동의하는 청년 여성 비율은 2008년 52.9%에서 2018년 72.2%로 높아졌습니다. 비혼 출산에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도 같은 기간 26.2%에서 36.3%로 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출산 지원책도 청년들의 현실 인식에 걸맞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김은지 위원은 "일시적 출산장려금이나 난임·다자녀 가구 우선 지원정책 등은 지금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프레임"이라며 "오히려 안전
그는 "특히 아동이 어떤 가족 상황에서 자라더라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기본적인 양육비용은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