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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값 1조6천억 짜리 은행나무. [사진 = 한국관광공사] |
백종원도 울고 갈 단풍 레시피(요리법). 메인 요리 '만추 홍엽(晩秋紅葉)', 거기에 '당일치기'와 '최고'의 가을 양념 한큰술씩을 톡톡 털어넣어드린다. 코로나 시절임을 감안해 코스도 거리두기다. 지상파와 공중파로 딱 나눠 드린다. 걷기를 즐기는 지상파에겐 몸값 1조원 짜리 은행나무 나들이. 공중파들에겐 지상 500m 통유리창 단풍 스폿과 고도 1만피트의 언택트 단풍 나들이 코스를 찍어드린다. 코로나 시대다. 조용히 다녀오시라. 소문나면 붐비니까.
◇ 넘버1 = 최고 몸값 1조6천억 짜리 은행
'와'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일인 지난 26일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는데 입구부터 막힌다. 코발트 빛 가을 하늘을 뒤로 하고 떡하니 선 기와 입구문. '경기제일 용문산'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콱 박힌다. 차량들이 언택트 분위기를 감안해 2m 간격유지를 한 채 줄지어 있다. 최고가 은행나무 인기에 야외라는 코로나 특수를 덤으로 누리는 곳. 양평 최고의 단풍 핫스폿인 용문산하고도 가을 'SNS 인증샷' 포인트로 핫 하게 떠버린 곳, 용문사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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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사 입구의 트릭아트. [사진 =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
일단, 고정관념부터 깨고가자. 사찰 하면 정숙함과 진중함만 떠올리실 터. 용문사는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아예 주차장에서 일주문 앞까지 1km 이어지는 공간이 통째 단풍 테마파크로 변신시켰다. 그야말로 '단풍 천지개벽'이다. 트랜스포밍 1단계는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테마가 있으니 말 다했다. 이 곳의 테마는 7080. 주차장 옆 200평 정도 됨직한 널찍한 건물이 '추억의 청춘 뮤지엄'. 시간을 뭉텅 떼 내 7080시대로 돌려놓는 타임머신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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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청춘 뮤지엄. 7080 박물관이다. |
주차장 주변의 바닥도 기가 막힌다. 아스팔트 바닥에 트릭아트를 꾸며, 연꽃 호수 위를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트랜스포밍 2단계는 용문사 사찰 요금소를 지난 뒤 바로 펼쳐지는 야외 정원. 사찰 앞에 무슨 정원이냐고 하겠지만 이거 장난 아니다. 왠만한 수목원 저리가라다. 지름 2m 남짓한 '은행'조형물을 지나면 우측으로 산책로가 펼쳐진다. 기자는 이 곳을 '떠벌이 산책로'라 부른다. '사랑해, 좋아해, 결혼해...'같은 문구가 코스 곳곳에 새겨져 있으니, 동행자에게 살짝 귀띔해 주시며 걸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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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코스.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이 사람의 몸매에 맞춰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
살벌한(?) 코스도 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도록 나무 기둥을 세워둔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코스. 각각의 기둥에 △난 홀쭉(18cm) △난 날씬(20cm) △난 표준(23cm) △난 통통(25cm) △난 뚱뚱(27cm) 등 기발한 문패가 달려 있다. 너무 좁은 것 아니냐고? 이런 불만이 터져나오시는 분들은 그 옆 △이러시면 안됩니다(29cm)와 당신은 외계인(32cm) 코스를 지나시면 된다.
하이라이트 은행나무는 1km 정도 걸어가니 나온다. 오, 직접보니 그 영험한 기운이 그대로 뿜어져 나온다. 용문사 대웅전 바로 앞, 바로 그 나무. 다섯 그루의 은행나무가 절묘하게 서로를 감싸고 하늘로 뻗어 있다. 높이만 42m, 가장 굵은 둘레는 성인 7명이 팔로 감아 둘러쌀 정도인 14m다. 천연기념물 30호인 이 나무의 나이는 1500살 정도. 사연도 많다. 정미의병 때 왜군이 이 사찰을 불태웠을 때도 이 나무만 살아서 천왕목(天王木)이라 불렸고, 조선 세종 때는 정3품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한 명목이기도 하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나무의 몸값. '대한민국 가치 대발견'이라는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선 이 영물이 200년 정도를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그 가치가 무려 1조6884억원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는데, 어라? 바람이 불자, 그 명목에서 은행나무 잎이 여러 장 날려 왔다. 주변에서 인증샷을 찍던 아주머니 부대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몸값이 1조6000억이면, 잎 한장엔 얼마야?'. 모두의 머리에 이 생각이 스쳐갔을 터. 줌마부대와 기자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파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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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사에서 꼭 맛봐야하는 은행 핫도그. |
▶ 용문사 100배 즐기는 Tip = 무조건 맛봐야 할 용문사 먹거리 딱 두가지다. 하나는 은행나무 바로 아래 카페에서 파는 연꿀빵. 연근 마 팥을 섞은 절묘한 맛이 난다. 또 다른 하나가 은행 핫도그. '추억의 청춘뮤지엄' 바로 옆 가게에서 파는데, 은행을 갈아나온 가루를 밀가루 반죽에 섞어 튀긴다. 맛? 비밀이다. 직접 가셔 드셔보시라.
◇ 넘버2 = 해발 500m와 1만피트 상공 단풍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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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석촌호수의 단풍. [사진 제공 = 롯데월드] |
공중파를 위한 코스. 단계를 밟아가자. 1단계는 몸풀기. 지상 500m 허공에서 내려다 보는 단풍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 송파구 도심 한복판의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 이미 △최고층 유리 전망대(478m·118층), △최장 수송 거리 △가장 빠른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등 세 가지 항목으로 '기네스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곳이다.
서울 스카이 가을 최고의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지상 500m 허공의 전망대다. 올라가는 방식 부터 재밌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텐데 특별할 게 있냐고? 있다. 이 엘리베이터가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놀랍게도 아래 위 2개가 복층으로 달린 구조. 더블데크 엘리베이터로 불린다. 관람객들은 지하 1층, 지하 2층으로 나눠 탄다. 그리고 허공 500m로 올려다 놓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딱 1분. 어어, 하다보면 바로 전망대다. 118층에 도착한 다음은 뻔하다. 3m 남짓 길이의 투명한 통유리 바닥 위를 살금살금 걸어서 바깥 창 쪽에 딱 붙어서면 된다. 왼쪽 아래켠으로 딱 박히는 석촌호수 단풍. 절묘하게 직사각형 석촌호수를 따라 형형색색 단풍들이 감홍빛 빛을 내고 도열해 있다. 투명 전망대 위의 이 포인트는 문재인 대통령 포인트라 불린다. 문 대통령이 인도 모디 총리 방한때 함께 이 포인트에 서서 절경을 바라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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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내에서 내려다 본 한라산 백록담. |
'이쯤이야' 하시는 공중파 분들을 위한 심화 단계. '20분 완판' 신화의 한반도 일주 비행이다. 아시아나 제주항공에 이어 하나투어 등 여행사들까지 줄줄이 판매에 나서고 있는 코로나시대 비행기 뉴노멀 코스. 물론 허무하긴 하다. 도착지? 없다. 여행시간이라 해 봐야 2시간 남짓.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영화 한편 보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헌데, 이거 반전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의 반전은 기내식. 해외 여행길이 꽉 막혔는데, 국내 하늘을 돌며 기내식을 주니 반가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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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내식을 먹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
하늘길 코스도 반전 매력이 있다. 대부분 한반도롤 U자로 돌고 출발지로 컴백한다. 지금 가야하는 이유는 한반도 단풍 구경 탓. 시속 800~900kn/h 속도, 고도 1만 피트로 순항하는 평소 코스와는 달리, 저고도 비행을 하며 단풍 명소 곳곳을 훑는다. 압권은 제주 한라산 코스. 고도를 5000피트 이하로 확 낮춘 뒤 백록담 위를 원형으로 선회하며 단풍과 억새가 절경인 한라산 위를 누빈다. 기내 방송은 반전을 넘어 파격 수준이다. 기장과 부기장은 "승객 여러분, 저는 이 비행기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실 기장입니다..."로 시작하는 지겨운 멘트 대신 "저희 비행기는 제주 관제탑의 허가를 득해, 한라산 위를 선회하고 있습니다/왼쪽으로는 단풍이 물든 오대산과 설악산을, 오른쪽 창으로는 강릉과 멀리 포항까지 관측할 수 있습니다" 같은 부드러운 문화해설사 멘트로 분위기를 돋군다. 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폰카를 찍는데, 어라? '럭키 드로우'추첨이라며 기내 방송이 나온다. 주변에서 연신 인증샷을 찍던 승객들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뭐야? 1등 상품이 동남아 왕복 항공권? 39C 좌석이라고?". 승객들과 기자의 눈에 동시에 그 좌석에 쏠렸다. 비었다. 동시에 그 자리로 승객 서너명이 뛰었다. 후다닥.
▶ 롯데타워·한반도 일주비행 즐기는 Tip = 롯데타워 전망대 코스는 어른 2만7000원 어린이 2만4000원. 웨이팅이 없는 패스트 패스(FAST PA
SS)는 5만원이다. 아시아나 항공의 A380 한반도 일주 비행 가격은 비즈니스 스위트석 30만5000원, 비즈니스 스마트티움석 25만5000원씩. 하나투어는 인천 국제공항 인근 5성급 '아트테인먼트 호텔' 파라다이스 시티에 투숙하는 에어텔(항공+숙박) 상품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양평·제주 =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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