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사망 후 친모와 유족 간 상속 분쟁을 계기로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낸 부모가 유산을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이어지는 등 여론이 들끓지만, 막상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에 신중한 모습입니다.
오늘(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일부개정안은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할 경우 친족이라도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행법에도 상속 결격사유가 규정돼 있긴 하지만, 직계존속 등을 고의로 살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합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상속제도 아래에서는 가출·이혼 등으로 피상속인인 자녀와 유대관계가 없는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일이 종종 발생해 논란이 이어져 왔습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아들이 전사하자 연락을 끊었던 친모가 군인 사망보상금의 절반을 받아 가거나,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딸에게 지급된 사망보험금을 10여년 전 어머니와 이혼한 친부가 별도 협의 없이 절반을 수령한 사례 등이 대표적입니다.
올해 6월에도 전북에서 순직이 인정된 소방관의 친모가 30년 만에 나타나 딸의 유족연금과 퇴직금을 수령하려 한 사실이 알려져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라 불리며 공분이 일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도 젊은 딸이 암으로 숨지자 생모가 28년 만에 나타나 억대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가고, 고인을 돌본 계모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소송까지 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상속 결격·제한사유 확대와 관련된 법률안 5건이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가 '계속심사' 결정을 내리면서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습니다.
이는 사회변화에 따른 상속권 제도 정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양의무의 현저한 해태(懈怠, 게을리함)'라는 개념이 모호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법조계의 지적 때문입니다.
올해 6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재발의한 민법 1004조 개정안에 대한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법적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계·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보고서는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또 그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부모의 상속 결격사유가 사후에 확인될 경우 상속재산을 취득한 제3자가 피해를 볼 수 있고, 피상속인이 부모를 용서했는데도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2017년 헌법재판소 역시 "가족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나 정도가 다양하다"며 "이를 상속 결격사유로 본다면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만큼 하루빨리 '구하라법'을 통과시켜 법적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구하라 씨 오빠 호인 씨의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가족으로서의 권리가 존재하려면 기본적 의무 역시 다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라며 "모호한 판단 기준은 해외 사례처럼 개별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실제로 일본과 스위스, 중국 등 해외의 경우 상속권 박탈 사유에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 변호사는 "아무리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녀 양육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사망으로 인한 재산은 다 가져가는 것은 정의와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