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애야. 예쁜 우리 딸. 빨리 만나자. 널 만나니까 너무 좋아. 내 소원 다 풀어준다 인제. 못찾았으면 눈감고 못 죽었을 텐데 이제 소원이 없다."- 44년 만에 딸의 얼굴을 본 친어머니 이응순 씨(78)
(통역)"가족을 안아보고 다 같이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쁨에 압도된다" (직접)"엄마 예뻐요", "엄마 사랑해"- 친모를 찾게 된 미국 버몬트주 거주 윤상애 씨(47)
1976년 여름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남대문시장으로 외출했다가 실종된 3살박이 여아가 47살의 중년이 되어 친모를 만났다. 같은 해 12월 미국으로 입양된 윤상애 씨의 사연이다.
가족들은 그날 이후 상애씨를 애타게 찾았다. 남대문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고 통금시간을 꽉 채워가며 아이를 찾는다는 전단을 붙이고 돌아다녔다. 서울에 있는 보육원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결국 가족들은 상애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남대문시장에서 생업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서 한복집을, 오빠는 복권방을 열었다.
↑ 윤상애 씨의 미국 양어머니와 양언니
한국어를 잊어버린 윤 씨는 통역을 통해 "경기도 수원의 한 병원에 버려졌다고 전해 들었다"며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쌍둥이 언니와 오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답했다. 이에 가족들은 "수원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서울에서만 찾았다"며 "우리는 절대 널 버린 게 아니다"며 눈물을 흘렸다.
44년 만에 상봉은 일단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출입국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8일 경찰청은 44년 전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윤상애 씨가 친모 이응순씨와 지난 15일 극적으로 상봉했다고 밝혔다. 이번 상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선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비대면 화상통화로 이뤄졌다. 윤 씨는 정부의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찾기'제도를 통해 재외공관에서 유전자 채취 후 친자관계를 확인한 최초 사례자다.
↑ 윤상애씨와 윤씨의 가족들이 15일 화상으로 만나고 있다.
윤 씨는 "처음 DNA가 일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결과를 받아보고 눈물이 났다. 정말 놀랍다"고 소감을 말했다. 친 어머니 이응순 씨도 "너무 좋고 꿈만 같다. 멀리 미국에 있는 줄 모르고 서울에서만 찾았다. 너무 행복하고 빨리 보고 싶다"면서 "한국음식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해줄테니 말해"라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딸은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족들은 화면에서 보이는 서로의 모습을 사진을 남겼다.
↑ 44년 만에 딸을 만나게 된 이응순 씨(좌측 세번째)와 가족들
윤 씨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지난 2016년 국내에 입국해 유전자를 채취했었다고 한다. 이 씨도 마침 2017년에 경찰서를 방문해 유전자를 채취한 게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친자관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의 유전자를 다시 채취해야 했는데, 윤씨는 보스턴 총영사관에 방문해 유전자를 재채취했고 이를 국내로 가져와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정확한 감정을 통해 이씨의 친딸임이 최종 확인됐다.
↑ 미국 보스턴 총영사관에서 유전체를 채취하고 있는 윤상애 씨
친모 이씨는 "끝까지 딸 찾기를 포기하지 않아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이 소식이 다른 실종자 가족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윤씨 또한 "어머니와 언니를 찾게 돼 정말 기쁘다"며 "앞으로 자주 만나고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직접 상봉할 예정이다. 김창
룡 경찰청장은 "장기실종자 발견은 실종자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염원이 담긴 숙원과제"라며 "이번 상봉이 더 많은 실종아동을 찾게 되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경찰은 장기실종아동 발견을 위해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희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