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 남성 B씨가 골목길에서 일부러 차에 부딪친 뒤 "부모님 유골함이 깨졌다"며 울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부산경찰청]
지난 6월 부산시 남구의 한 주택가. 골목길로 차를 몰고 가던 A씨(30대·여)는 갑자기 사이드미러 쪽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에 놀라 차를 세웠다. 밖으로 나가보니 60대로 보이는 노신사가 바닥에 깨진 사기그릇을 만지며 슬퍼하고 있었다. 검은색 양복을 입고 상주 차림을 한 이 남성은 운전자를 향해 노란 봉투를 던졌는데 거기에는 '사망진단서(화장장)'라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이 남성은 "부모님 유골함이 깨졌다"며 30만원의 현금을 요구했다. 고인의 유골함을 깨뜨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운전자 A씨는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이 남성에게 건넸다. A씨는 이후 자신이 해당 남성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은 사실이 못내 찝찝했다. 나중에 뺑소니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A씨는 경찰에 사고를 신고했다.
↑ 60대 남성 B씨가 `손목치기`를 하기 전에 자신의 팔을 보호하기 위해 실리콘으로 자체 제작한 보호장치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부산경찰청]
반전은 이때부터 일어났다. 신고를 받은 부산 남부경찰서 수사관은 사건 내용을 듣고는 이상함을 직감했다. 얼마 전에도 똑같은 내용의 사고가 한건 접수됐기 때문이다. 남부경찰서는 다른 경찰서에도 비슷한 사건이 접수된 것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모두 11건이 있는 것을 찾아내 이 남성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이 남성은 주로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만 돌아다녀 소재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피해자 1명이 이 남성을 길에서 우연히 목격하고 신고했고, 경찰이 그 장소를 시작으로 CCTV를 수사해 이 남성이 B씨(60대·남)임을 확인하고 덜미를 잡았다. 경찰은 B씨가 지난해 5월부터 이달 7일까지 11명에게 109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명 '손목치기'라고 불리는 수법으로 사이드미러에 손목을 부딪쳐 소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다가 검
거돼 처벌 전력도 몇차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남성은 '유골함 사기'를 위해 실리콘으로 자체 제작한 보호장치를 오른팔에 끼고 범행 연습도 사전에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를 본 운전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 = 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