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가 합의문 작성에 성공하면서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가 일단락됐다. 서로 상처는 입었으되 승패를 가린다면 의사들이 승자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상 철회로 봐야 할 것이다. 동력 잃어버린 정책을 이 정부 임기내 재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파업사태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다만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치고는 여론 지지가 상당했다. 애초 정부 접근방식에 일방적인 측면이 있었고 공공의대 시민단체 추천 논란을 거치며 정책 명분에 큰 금이 갔다.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놓은 대통령 페이스북글도 마이너스가 됐다. 의사와 정부간 대립이 정부비판세력과 친정부 세력간 진영대결로 확장된 측면이 있었다.
진짜 승리요인은 따로 있다.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이다. 의사는 민간인이고 파업은 합법이다. 의사 파업은 그 영향력에서 타 직군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픈 사람이 진료를 못받으면 의사들과 사태를 야기한 정부를 동시에 욕한다. 그러나 의사는 불특정 다수인 반면 정부는 하나다. 시간이 갈수록 정부가 불리하다. 다른 직군과 달리 정부가 취할 수단은 거의 없다. 투입할 대체인력도 없고 공권력을 동원해 진료현장으로 끌고 나올수도 없다. 파업 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해봐야 공포탄에 불과하다는걸 의사도 알고 정부도 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의사는 희소성높은 전문직이라 자격박탈하면 국가가 손해다. 한두명 구속시키고 면허취소해본들 원상 복구는 시간문제다. 게다가 도제문화가 지배하는 의사들의 조직력은 얼마나 끈끈한가.
한마디로 정부가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이 정부들어 여권이 이처럼 스타일 구긴 사례가 또 있었나 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표적 집단은 반드시 박살내는게 현 여권이다. 검찰은 최근까지 우리사회에서 몇 안되는 '쎈' 집단이었다. 정권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는데 이 정부는 그렇게 했다. 조직과 권한 축소, 인사로 거의 죽여놨지만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른다. 줄사표는 아무 문제가 안된다. 고분고분 말 잘들는 검사들이 줄을 섰다. 검사들은 의사들처럼 파업을 할 수도 없다.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그 파업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반길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야당도 그렇다. 과거에는 야당이 장외로 나가면 여당이 부담스러워했다. 어쨌든 국회 공전의 책임은 나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전할 일 자체가 없다. 단독 처리에 이골이 난 여당이라 야당이 국회에 있든, 장외에 있든 실상 차이도 없다.
이런 괴력의 여권을 무릎꿇린게 의사들이다. 평소와 달리 대통령이 직접 전장에 나서 지휘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정권 레임덕이 여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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