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반지하 주택이 많이 위치한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택가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언제 또다시 폭우가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젖은 가구 등을 빼내고 집 안에 물기를 제거하면서 다가오는 전투에 대비하는 있었다. 물을 퍼내 담아둔 물통 수십여개가 집 앞에 비치돼 있는 건 기본이었다. 한 반지하 주택의 현관엔 나뭇가지와 진흙이 떠내려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일부 반지하 주택 주변엔 물에 젖은 채 방치된 가구들도 종종 보였다. 버리기 위해 내놓은 듯한 침대 매트리스는 흙탕물에 흠뻑 젖어 더 이상 사용하긴 힘들어보였다. 파손된 의자, 책상 등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반지하 방을 포함한 2층 규모 주택에 사는 중년의 한 남성은 반지하 방에 보관해뒀던 의류들이 모두 젖어 외부로 꺼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A씨는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하니까 제때 대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는 70대 남성 B씨는 집중호우로 인해 파손된 집안 수리를 위해 철제 사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태도로 버려야 할 폐기물들을 집 도로와 골목 모퉁이에 쌓아두기 일쑤였다. 벽면에 적힌 '쓰레기 배출 금지구역'이란 안내문구도 무용지물이었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장기화되면서 저지대나 반지하주택 등 침수우려지역에 사는 이들의 근심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창틀에 물막이판 등의 침수피해방지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가구가 많아 시설 보급 확대와 규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금도 서울시내 곳곳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은 영화 '기생충'의 가족처럼 물난리를 겪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반지하주택 등 지하공간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수 십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최근인 2015년 통계를 보면 지하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가 36만3896가구(68만8999명)에 이른다. 특히 서울 22만8467가구(62.8%), 경기도 9만9291가구(27.3%), 인천 2만124가구(5.8%) 등 수도권에 전체 가구의 95.8%인 34만8782가구가 집중돼 있다.
이날 찾은 관악구 봉천동의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는 반지하층이 있는 주택들을 다수 목격할 수 있었다. 관악구는 지하 공간에 거주하는 가구가 1만9121가구로 서울 내 최다 지역이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들의 창문에 물막이판을 설치해 침수피해를 예방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물막이판 등 침수피해방지 시설이 반지하주택에 부족한 이유로는 대부분의 반지하주택이 소유자와 거주자가 다르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거주하면서 불편을 겪는 이와 설치 비용 부담을 해야 하는 이가 다르기에 적극적인 대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막이판 등 침수피해방지 시설이 없는 반지하에 세입자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문을 꼭 닫아놓는 게 전부다. 관악구 봉천동에 거주하고 있는 이 모씨(26)는 "요즘 비가 너무 자주 와서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는 수준이다. 축축한 환경 때문에 벽지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싶어 습기제거제를 사놨다"면서 "또 폭우가 내리면 집 밖에 물이 차오르는게 보이는데 혹시라도 창문 틈새로 빗물이 들어올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저지대 침수예방을 위해 물막이판이나 수중펌프, 역류방지시설 등을 신청자에 한해 무료로 설치해주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만74가구에 침수피해방지 시설을 설치했으며, 서울시와 신청 가구가 위치한 자치구가 절반씩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그러나 유지관리 비용은 건물주가 부담하게 돼 있어 침수방지시설이 고장나거나 훼손된다면 그대로 방치될 여지가 남아있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침수피해에 취약한 반지하가구에 대한 근원적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원철
[박윤균 기자 /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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