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경계에 집중하던 군이 '턱 밑'에서 허를 찔렸습니다.
군이 자랑해온 전·후방 지역의 과학화 경계감시 시스템은 점검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채 방치된 배수로 틈새를 노린 월북자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전에 월북 의심 첩보가 군경 간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가 하면 '심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넘어왔다'는 북한의 주장을 확인하는 데만도 나흘이 걸리는 등 부처 간 공조도 유기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 '배수로 1일 2회 점검' 지켰더라면…감시 사각지대 확인
오늘(31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탈북민 24살 김모 씨가 빠져나간 인천 강화도 월곳리 연미정 인근 배수로의 경우 장기간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군 당국이 이날 취재진에 공개한 배수로 내부 사진을 보면 수직으로 된 철근 구조물이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벌어져 있는 등 관리가 미흡했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하루에 두 번 점검하도록 지침이 돼 있지만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과 확인해보니까 실제 하고 있지 않았다"며 "경계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과오를 확인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기본 중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전방지역 내 취약 시설에 대한 점검 누락이 '감시 사각지대'를 초래한 셈입니다.
이후 김씨가 북한 땅에 도착하기까지 한강 하구를 건너는 장면이 지점별로 군 감시장비에 7차례 포착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북측 경계에 집중하는 전방 부대 특성과 감시장비 화질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당시 운용병이 이를 실시간으로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월북을 막기 위해선 배수로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 애초에 철책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더욱이 사건이 벌어진 곳과 유사한 형태의 배수로가 김포·강화·교동도 일대에만 1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민간인들이 접근 가능한 취약 시설에 대한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옵니다.
◇ 사전에 '월북 의심' 확인됐는데…군은 모르고 경찰은 늑장 수사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탈북한 지 아직 5년이 안됐기 때문에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김씨의 경우 중대한 성범죄 혐의를 받던 상황이어서 평소보다 엄밀한 관리가 요구되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김씨의 지인이 지난 19일 오전 경찰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김씨의 월북 가능성을 제보했지만, 경찰이 34시간이 지나서야 참고인 조사를 한 사실이 알려져 늑장 대응이란 비판이 일기도 했습니다.
탈북민의 월북 가능성이 높은 중대 사안이 발생했음에도 군 당국과 경찰, 국가정보원 사이에는 어떠한 정보 공유나 협조 요청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군경 간 공조 문제는 지난달 소형 모터보트를 탄 중국인들의 태안 밀입국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불거지는 등 이미 과거 여러 차례 지적이 됐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재발 방지 대책 중 하나로 "(군경 간) 첩보 공유를 적극적으로 하고 협조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태안 밀입국 사건 때도 했던 말입니다.
◇ "의심환자" 北주장 확인 시급한데…나흘 만에 "가능성 낮다"
이번 사안의 경우 줄곧 '코로나19 청정국'을 자처해온 북한이 '의심환자'라고 대내외에 공표하고 개성 봉쇄까지 한 만큼, 김씨의 확진 여부는 당국이 가장 신속하게 확인해야 할 '팩트' 중 하나였습니다.
김씨가 코로나19와 무관하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이는 북한이 이번 월북 사건을 자국 내 코로나19 상황과 연관 지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경찰과 군 당국이 북한 보도가 나온 26일 당일 이미 김씨의 신원을 특정해 조사에 착수한 상황에서, 박능후 중앙방역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같은 날 오후 브리핑에서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내놨습니다.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임에도 군과 경찰, 방역당국 간 신속한 정보 공유 및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방증한 것입니다.
방역당국은 다음날 김씨가 코로나1
이어 30일이 돼서야 김씨의 소지품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등의 추가 확인 결과와 함께 "코로나 감염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라고 최종 발표했습니다. 북한 보도가 나온 지 나흘 만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