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를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겠다던 월성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재검토 위원회가 결국 갈등만 극단적으로 키운 채 종료됐다. 과거 정부와 다르게 진정한 의미의 공론화를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재검토위)는 월성 원전은 24일 81.4%로 임시저장시설 맥스터 증설에 대한 찬성의견이 높았다고 발표했다.
발전에 쓴 핵연료를 보관하는 장소가 맥스터인데 월성 원전의 경우 올 3월 기준 95%가 찼다. 2022년 3월엔 완전히 포화할 것으로 추정돼 추가로 지어야 원전 가동을 이어갈 수 있다. 맥스터 공사 기간이 1년 7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8월엔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입장이다.
하지만 81.4%라는 압도적인 여론 수렴 찬성 비중에도 불구하고 발표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재검토위 측은 시민참여단 91%가 공론화 과정에 만족을 표했다고 자찬했지만 현장은 달랐다. 회견장인 경북 경주 감포읍복지회관 입구에서 찬·반 단체 관계자들이 고성을 지르며 뒤엉켰다. 반대 주민 300여명은 복지회관 앞에서 경찰 2개 중대와 대치하다가 회의실로 몰려갔고 이 과정에서 충돌해 일부 주민이 다쳤다. 결국 재검토위의 현장 발표는 진행되지 못했고 충돌이 격화되자 자료만 배포했다.
봉합되지 못한 갈등 현장은 경주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같은 시각 국회에서도 재검토위의 여론 수렴 결과를 부정하며 증설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펼쳐졌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정론관에서 "한국수력원자력 하청업체 직원들이 설문조사 대상에 다수 포함되는 등 표본집단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공론화를 정상적인 공론화로 볼 수 없다"면서 "산자부가 이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문재인 정부가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 처럼 결과 발표에서도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고 공론화가 공론(空論)이 된 이유는 재검토위 잘못 끼워진 첫단추처럼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파행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당초 박근혜정부에서는 2016년 7월 공론화위원회가 주민·시민단체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세웠다. 2029년까지 영구 처분장 용지를 선정하고, 2036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 2053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정부에서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며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그 후 국민 의견이 반영된 결과를 따르겠다며 재공론화를 결정했다. 하지만 갈등은 오히려 더 첨예해졌다. 위원 15명 가운데 4명이 지난해 말 위원회 활동 방향에 대해 이견을 내보이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급기야 정정화 전 위원장이 위원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해체를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던 와중에 결국 데드라인이 다가왔고 갈등이 봉합되지 못한 채 여론 조사를 강행하게 됐다. 김 위원장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은 무거운 숙제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재검토위는 오늘 발표한 공론화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하고, 산업부는 한국수력원자력에 최종 의견을 전달하게 된다. 이후 한수원은 경주시 양남면에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에 관한 공작물 축조를 신고할 방침이다.
탈핵단체 등 일부 시민들은 '재검토위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강경한 대응을 이어간다는 각오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여론수렴을 과정을 거친 만큼 과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측은 "경주 의견수렴 결과의 취지를 존중하며, 이와 함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여 최종 정책결정 예정"이라면서 "의견수렴 과정에 참여하여 주신 경주 시민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재검토위는 향후 근본적인 중장기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재검토위의 권고안을 토대로 내년 중 제2차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증폭된 논란이 봉합되지 않은 만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시균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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