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고소 사건은 그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소모적인 논란을 막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경찰·검찰·법원이 팔짱을 끼고 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피고소 사건은 현행 법령상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는게 타당하다"고 했다. 피고소인이 사망했으니 수사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김 후보자는 "대통령이 지시해도 직접 수사는 법적으로 어렵다"는 이상한 말도 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성추행 방조 의혹에 대해서만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는데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현행 법령이 어떤 규정을 갖고 있기에 경찰이 이처럼 소극적일까. '공소권 없음'은 '검찰사건사무규칙 69조'에 나온다. '경찰·검찰이 수사하지 않아도 되는 사례'를 열거해놓은 조항이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처벌할 사람이 없기에 수사하지 않아도 되는 사례로 언급해 놓은 것이다. "수사하지 말라"거나 "수사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아니다.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경찰·검찰이 수사를 해야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러 피해자로부터 거액을 갈취한 피의자가 어딘가로 돈을 빼돌린 상태에서 갑자기 사고로 사망했다고 치자. 그 때에도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수사를 중단한다면 피해자들은 어떻게 돈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공소권 없음'에도 수사를 진행한 사례 또한 얼마든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국민적 관심사가 높으니 김학의·장자연 사건을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수사하라" 라고 지시했다. 수사도 실제로 이뤄졌다. 또 민갑룡 경찰청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지난해 10월 공소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해서 유독 경찰이 '공소권 없음'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박 전 시장은 정치적 영향력이 크고 지지층도 넓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둘러싼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놓지 않으면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당장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사례를 보라. 그는 20일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게 맞다"고 했다가 22일에는 "나는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 없다"며 마치 딴사람처럼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서울시장 무공천 논의는 당연히 서울시장의 중대한 잘못을 전제하는 것이고 잘못이 없다면 책임질 이유도 없다"고 했다. 박 시장이 잘못했는지 아닌지 모르는거 아니냐는 식이다. 본질을 흐리는 이런 해괴한 아전인수식 주장이 앞으로도 얼마나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법원의 태도도 이상하다. 서울시 직원들의 성추행 방조·묵인 의혹을 밝히기 위해 경찰이 서울시청 청사와 박 전시장 휴대전화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22일 기각했다. 법원은 17일에도 박 전 시장의 사망경위 확인을 위해 경찰이 박 전시장 휴대전화 3대에 신청한 통신영장을 "강제수사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수사의지가 부족한 경찰은 부실한 영장신청서를 제출하고 법원은 옳거니 하면서 영장을 기각하고 있다. '박원순 성추행'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박 전 시장이 '네 편'이었어도 이렇게 대응했을지 궁금하다. 2020년 한국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지 갈수록 의문이 커져 간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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