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검사의 직접수사 대상을 제한하고 중대사건의 경우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검경 수사권조정 시행령 잠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대표적인 검찰개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검경 수사권조정이 속도를 내면서 검경의 반발은 물론 정치권의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여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잠정안을 법무부와 검찰 등 관계기관에 전달했다. 잠정안에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 4급 이상 공직자의 범죄 ▲ 3000만원 이상 뇌물을 받은 부패 범죄 ▲ 마약 밀수 범죄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5급 이하 공직자의 범죄나 3000만원 미만 뇌물죄의 경우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행령에 규정되지 않은 범죄 가운데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경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4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검찰청법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명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위임하도록 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검경간 첨예한 대립으로 실제 검경간 수사영역을 좌우할 시행령 마련에 진통을 겪어왔다. 검찰개혁의 또다른 축인 공수처가 여야 대립으로 이미 법정시한인 15일을 넘겨서도 출범을 못하고 있는 만큼 청와대로선 검경수사권 조정만이라도 일단 속도를 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청와대의 시행령 잠정안에 검찰은 물론 경찰도 반발하고 있어 검경간 신경전이 또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출범을 비판하며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야당도 이번 시행령에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날 법무부는 청와대가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시행령 잠정안'에 대해 "확정된 안이 아니며 긴밀히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시행령 마련을 주도하고 있지만, 법무부도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중이다. 잠정안 내용이 계속 바뀌고 있고, 향후 또 바뀔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잠정안에 중대범죄 등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때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사건, '청와대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사건 등 검찰이 친여 인사들을 수사해야 할 때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막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법무부 간부는 "잠정안이 시행되면 검찰의 수사범위가 대폭 제한되기 때문에 (중대범죄에 대한 장관 승인) 조항마저 없다면 경찰에 거의 모든 수사권을 넘겨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또 "총장 건의가 선행돼야 해 법무부 장관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국가의 형사사법시스템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최근 일시적으로 긴장상태에 있는 장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1월 31일 대통령 직속 수사권개혁 후속추진단이 설치돼 청와대·행정안전부·대검찰청·경찰청 관계자 등이 시행령 세부 내용을 논의해왔다.
[임성현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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