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세상을 떠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박 전 시장의 사망 소식과 함께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그의 성추행 피소 사실입니다.
"비서로 재직한 4년간 성추행과 성희롱이 계속됐고,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뒤에도 지속됐다" - 피해자 A 씨
공직자의 성추문에 충격과 실망의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여론은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고소인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4년 동안 성추행을 참았다니, 요즘 시대에 말이 되냐"
"비서 말을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폭로했나"
이처럼 폭로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반응은 정치인과 공무원의 성추문이 터질 때마다 나오곤 합니다.
2018년에 과거 상관으로부터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당시 서 검사의 폭로에도 "검사가 그때 바로 법적 처리를 못 하고 한참 지나서 폭로하냐"는 비난이 나왔습니다.
반복되는 의문, 혹은 의심.
'성폭력 피해자가 곧바로 반격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폭로하는 이유는 뭘까?'
성폭력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들입니다.
죄책감, 자신을 '더럽다'고 느낌, 우울, 성 접촉에 거부감.
그 중 매우 특징적인 반응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입니다.
PTSD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
PTSD 환자가 겪는 증상은 다양합니다.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에 극심한 반응 또는 주변이나 자신에 대한 혐오 등 부정적 감정, 집중력 감소, 기억력 저하 등입니다.
지난해 발표된 국내 연구 결과 성폭력 피해자의 PTSD 위험은 일반인의 32배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PTSD 수준은 전쟁터 군인이 겪는 정도로 심각합니다.
문제는 PTSD가 사건이 발생하고 한참이 지나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폭력 발생 후 피해자 중 다수는 자신이 겪은 것이 성폭력이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특정 단서를 마주치면 머릿속 어딘가에
뒤늦게 발현되어 환자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PTSD, 이 때문에 "성범죄의 손해배상 청구 시효를 없애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악화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PTSD 증상.
"왜 뒤늦게 문제 삼냐"는 말은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일지도 모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