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은 돈이나 지위 이상의 더 큰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주기 바라고, 빚이 더 많은 통장을 남여야 할 아내에게 미안함과 한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9일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64세.
그는 47세이던 2002년 유서를 남겼다.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절 펴낸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중앙M&B)' 저서에서다.
80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출자·운영하는 '시민의 신문'이 그 다음해인 2003년, '아름다운 유서쓰기 운동'을 시작한 단초가 됐다.
책에서 박 시장은 자녀와 아내, 지인에게 보내는 3통의 유서를 남겼다.
딸과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박 시장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다.
박 시장은 "너희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지도 못했고, 무언가 큰 가르침도 남기지 못했으니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라면서 "내 부모님의 선한 심성과 행동들이 아빠의 삶의 기반이 되었듯 내가 인생에서 이룬 작은 성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른 생각들이 너희의 삶에서 작은 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내가 저희에게 집 한채 마련해주지 못하고 세간조차 제대로 사주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면서 "우리가 약속했듯 대학까지만 졸업하고 나면 나머지 모든 것은 너희가 다 알아서해결하고 개척해 가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또 박 시장은 "너희는 돈과 지위 이상의 커다란 이상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면서 "그런 점에서 아빠가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큰 유산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강난희)에게는 "평온 대신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지켜주도록 했다"면서 "유언장이 아니라 참회문이 적당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아직도 내 통장에는 저금보다 부채가 더 많다오. 적지 않은 빚이 있는데 다행히 나와 함께 일하는 간사가 내가 마구 쓰는 것을 견제하면서 조금씩 적금을 들고 있는 모양이니 조만간 많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이해를 구했다. 그는 또 "이미 안구와 장기를 생명나눔실천회에 기부했다. 그분들에게 내 몸을 맡기라"고 부탁했다.
사후에는 부모님 옆에 묻히길 소원했다. "화장을 해서 내 부모님이 계신 산소옆에 나를 뿌려주기 바라오. 양지바른 곳이니 한겨울에도 따뜻한 햇볕을 지키면서 우리 부모님에게 못다 한 효도를 했으면 좋겠소"
그는 조용한 장례를 원했다. 박 시장은 아내에게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 영혼은 그들이 오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요. 내 부음조차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소. 신문에 내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마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부부의 연을 희망하기도 했다. 그는 "감히 다시 만나자고 할 염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야 또 만나자고 할 형편이오"
형제 등 가족과 지인에게도 한통의 유서를 남겼다. 형제들에게는 다음 세상에서도 한가족으로 태어나길 원했다. "변호사 동생 또는 오빠를 두었으니 뭔가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아픈 가슴만 남았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혹시 그럴 위치가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동생 또는 오빠가 되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에서는 '같은 가지에 태어나 가는 곳 모르겠소'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함께 '같은 가지'로 태어났으며 좋겠습니다."
초·중·고교 은사, 유·소년 시절 함께 뛰어놀던 친구,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겐 "큰 신세를 졌다"고도 했다. 박 시장은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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