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싼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과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됐다.
추 장관이 9일 "서울중앙지검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게 됐다"는 대검찰청 발표를 윤 총장의 수사지휘 수용 의사로 받아들이면서 파국으로 향하던 양측 충돌이 1주일 만에 수습 국면을 맞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정현 1차장-정진웅 형사1부장의 기존 수사지휘라인이 사건 수사를 그대로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추 장관이 수사 지휘권까지 포기하고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을 제안한 윤 총장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수사를 맡긴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윤 총장의 경우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의혹을 받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또한 검찰내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수사 편파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공정한 수사를 위해선 윤 총장과 이 지검장 모두 수사 지휘에서 손을 떼고 독립적인 수사본부를 꾸려 원점에서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수사팀도 정권과 검찰 수뇌부를 의식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더구나 검찰 내에선 법무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독립적 수사본부는 대검과 법무부 실무진이 사전에 물밑 협상을 벌여 내용과 문구를 조율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이 독립적 수사본부를 끝내 거부한 것은 앞으로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통제하고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또다른 정권비리 수사에 대해서도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 하다.
법무부 내부 논의과정에서 작성된 추장관의 발표문 초안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조국 백서' 저자 등 외부 인사들에게 사전에 유출된 의혹이 나오는 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법무부는 "장관과 대변인실 사이에 소통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최 대표도 "SNS에 올라온 다른 분(최민희 전 의원) 글을 복사해 잠깐 옮겨적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사람이 올린 글은 제목과 마침표의 유무, 문단 구성까지 달라 복사해서 붙인 글로 보기 힘들다.
더구나 최 대표가 썼다가 지운 법무부 알림 초안에는 '수명자'(受命者·법률명령을 받는 사람)라는 군사 재판용어가 포함돼 있어 "군 법무관 출신인 최 대표가 사전에 법무부와 내용을 논의하고 직접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만약 법무부 발표문 초안이 합법적 공식 계통을 벗어나 최 대표에게 유출됐거나 최 대표가 작성에 관여한 것이 맞다면, 이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로 관련자 모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현재 최 대표는 조국 전 장관 아들의 허위인턴 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다.
또 지난 4월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지와 녹취록에 채널 A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가 허위사실 유포혐의(명예훼손)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그런 최 대표가 '검사장을 포함한 수사팀을 불신임할 이유가 없음"이라는 초안을 입수해 퍼뜨렸다면 자신이 연루된 사건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로 볼 여지도 크다.
이런 점에서 미래통합당이 "과거 정권에서 권한이 없는 사람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했는데 이 사건도 국정농단"이라고 비판한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법무장관이 권력 끄나풀들과 작당하고 검찰총장에게 지시할 때마다 검찰이 순종해야 한다면 그게 나라냐"면서 "최순실은 숨어서라도 했지만 이들은 드러내놓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 발표문 초안이 외부에 유출된 과정을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그토록 핏대를 올리던 추 장관은 정작 법무부 초안 유출의혹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추 장관은 두달째 수사가 지지부진한 윤미향 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여전히 침묵만 고수하고 있다.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해선 동료 병사의 거듭된 증언에도 불구하고 "검언유착이 심각하다"며 애꿎은 언론 탓만 하고 있다.
이러니 시중에서 "정권의 눈엣가시인 윤 총장에게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자기 편에게는 한없는 봄바람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김병민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의 지적처럼, 법무장관은 정권을 지키는 호위무사도 아니고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리도 아니다.
법 때문에 서럽고 힘든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주는 것이 법무장관의 역할이다.
검찰 수사가 정권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외풍을 막아주는 것도 장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추 장관이 지향해야 할 표상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검, 또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디케)이어야 한다.
추 장관이 진정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가 되고 싶
지금처럼 권력비리 수사를 차단하고 자기 편을 위해 검과 저울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사용한다면 법치와 정의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정권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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