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막은 택시기사' 사건이 알려진 이후 해당 택시기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습니다.
구급차에 타고 있다 숨진 80세 여성의 아들이 "택시기사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며 지난 3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닷새 만에 65만여명이 동의해 공식 답변 요건을 훌쩍 넘겼습니다.
경찰은 서울 강동경찰서 교통과에서 수사 중인 이 사건에 형사과 강력팀을 추가로 투입해 택시기사의 형사법 위반 여부를 살피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응급환자 이송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발의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당 택시기사 개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택시기사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택시기사들이 속앓이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관련 기사에는 "사고 나면 놀면서 보험금 받으려고 사고 내려고 작정하는 것들", "택시들이 도로 위의 악의 축이고 가장 썩어빠진 집단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의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데는 택시업계 종사자들도 이견이 없습니다.
경력 7년인 서울의 한 법인택시 기사 51살 김모 씨는 "사고에서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는 있지만, 구급차에 환자가 탄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길을 터줬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당 택시기사가 '나도 사설 구급차를 몰아 봤다'고 말하는 걸 봐서 그 구급차가 일부의 잘못된 행태와 같이 응급상황을 가장해 사고 처리를 회피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그래도 생명이 먼저 아닌가. 환자의 상태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김성재 정책국장도 "사설 구급차를 신뢰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일반 병원이 아닌 응급실로 향하는 환자가 있을 때는 나중에 사고 처리를 하더라도 빨리 보내는 게 옳았다"고 말했습니다.
김 국장은 "해당 택시기사가 신입이어서 사고가 났을 때 차를 그냥 보내면 자기가 다 뒤집어써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런 오해가 있었더라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급차를 막은 택시기사 31살 최모 씨는 강동구의 한 택시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입사한 지 1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그는 사고 2주 만인 지난달 22일 퇴사했습니다.
법인택시 13년·개인택시 16년 경력자인 이선주 개인택시운송조합 대의원은 문제의 택시기사가 구급차를 가로막고, 구급차 기사와 환자 가족 등에게 언성을 높인 행위에 대해 "해당 기사 개인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그는 "어느 직업군이든 인성이 좋지 않은 일부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 않나"라며 "택시기사 전체의 문제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택시기사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택시기사들이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내는 방식으로 이익을 본다는 얘기가 많지만, 사고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택시기사들의 주장입니다. 법인택시 기사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에 보고하고 보험 처리를 하느라 매일 회사에 내야 하는 15만원 안팎의 사납금을 벌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9일 택시업계에 따르면 법인택시 기사의 월급은 급여(고정금), 부가가치세 환급금, 기사가 회사에 납입한 운송수입금에서 사납금을 뺀 '추가 수입금'으로 이뤄집니다.
회사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급여 자체는 대부분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사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뺀 금액 중 90%를 기사들이 돌려받는 부가가치세 환급금도 1인당 월 10여만원 수준입니다.
서울 소재 A법인택시 기사 54살 박모 씨는 "결국 법인택시 기사 월급은 추가 수입금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라며 "사납금을 내고도 하루 수익을 남기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차를 몰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년차 택시기사인 박씨는 "사고를 회사에 보고하거나, 때에 따라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사고라도 나면 수입이 몇만원 이상 날아가기 일쑤"라고 했습니다.
10년 경력인 서울 B법인택시 소속 57살 정모 씨는 "우선 차를 끌고 나왔다면 그날 운행을 아예 하지 못했더라도 무조건 사납금을 내야 한다"며 "그나마 상대방이 100% 잘못한 사고라면 위자료로 사납금을 충당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십만원대의 사고 분담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성재 정책국장은 "올해부터 사납금 제도가 폐지되고 기사들이 하루 운송수입을 회사에 모두 입금한 뒤 월급을 받는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며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시업계 사정이 어려워지며 실제로는 계속 사납금을 유지하는 회사가 많고, 당국의 단속도 철저히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국장은 "사고로 결근하더라도 사납금을 면제해 주지 않거나, 사고 손실액 전액에 대해 보험처리를 하면 회사의 보험료율이 올라가니 기사에게 일정 비율을 부담하도록 하는 등 기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처를 하는 회사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택시 기사들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17년간 택시를 운전한 개인택시 기사 60살 이모 씨는 "차가 망가져 영업을 못 해도 하루 4만∼5만원대 보상밖에 받지 못한다"며 "운송수입이 많은 날은 20만원을 넘기도 하는데, 당장 수입이 절반 넘게 줄어드니 사고가 나면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그렇다고 과거 일부 기사들처럼 병원에 '드러눕는' 것도 어렵다"며 "보험 판정이 까다로워져 장기간 입원하거나 차량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수리하고 보험금을 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 한 도로에서 구급
이 구급차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79세 폐암 4기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이었습니다. 환자는 다른 구급차로 옮겨 타고 병원에 도착했으나 그날 오후 9시쯤 숨졌습니다. 경찰은 해당 택시기사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