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당시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부녀자들을 연쇄 성폭행·살해한 이춘재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마무리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관련자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이춘재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살인인 '10차 사건'의 피해자 69살 권 모 씨의 시신이 당시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것은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입니다.
이 때문에 권 씨의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15년이 지난 2006년 4월 2일을 기해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됐습니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007년 법 개정 후 25년으로 늘었다가 2015년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완전히 폐지됐습니다.
태완이법은 1999년 대구에서 김태완(사망 당시 6세) 군이 괴한의 황산테러로 숨진 뒤 이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몰리자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태완이법 시행 전에 공소시효가 끝나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경찰이 이춘재를 살인 등 혐의로 정식 입건했지만, 재판에 넘겨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검찰로 넘겨진 이춘재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 전망입니다.
이춘재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직후인 지난해 9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은 '화성(이춘재)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안 의원 등은 "반인륜적이고 잔악무도한 이번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은 발의됐지만, 특정 사건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은 다른 법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위헌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경찰 또한 수사를 개시하면서 현행법상 이춘재에 대한 처벌은 불가하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재수사 과정에서는 엉망진창이던 과거 수사기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우선 '진범 논란'을 빚으면서 재심이 진행 중인 '8차 사건'과 관련,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모(53살·검거 당시 22살) 씨에 대한 불법 체포 및 감금이 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8차 사건' 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경찰관과 검사 8명을 입건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에게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 가혹행위 등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사건인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에서는 당시 경찰이 피해자 유골에 손을 댄 정황이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 30분께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김모 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사라진 것으로, 이춘재의 소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당시 담당 경찰관들이 김 양의 유류품과 사체 일부를 발견하고도 이를 은폐한 것으로 보고, 당시 형사계장과 형사 등 2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유족의 법률대리인 이정도 변호사는 지난 3월 사건을 은폐한 당시 담당 경찰관들을 고발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피고발인들은 범인을 체포해야 할 지위에 있었으나 오히려 범죄사실을 은폐하는 등 위법을 계속했다"면서 "위법 행위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범죄가 지속한다고 해석할
이 변호사의 주장이 수사기관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 34년 만에 베일을 벗었지만, 공소시효의 만료로 인해 이춘재는 물론 관련자 그 누구도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