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이○○ 경사입니다. 개인정보가 탈취당했으니 예금 보호를 위해 지금 빨리 돈을 찾아야 합니다. 강○○ 검사님 연결해드릴 테니까 지시에 따르세요."
지난달 6일 오전 10시 27분쯤 강원 강릉경찰서 생활안전계장 57살 이형재 경감에게 수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수사 경력만 29년에 단번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당이라는 것을 직감한 이 경감은 이 기회에 일당을 잡을 요량으로 당황한 척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검사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돈이 없어지는 겁니까" 등 보이스피싱 일당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속는 척을 하자 일당은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으라"며 현금 인출을 요구했습니다.
이 경감이 실제로 있지도 않은 돈 5천700만원이 통장에 있다고 털어놓자 일당은 은행에서 3천만원을 찾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600만원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가서 수표로 뽑겠습니다"라고 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조건 현금으로 찾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지폐의 일련번호를 요구해 이 경감이 임기응변으로 엉터리 번호를 불렀으나 이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당은 이 경감에게 인근 골목으로 가서 차를 대고 돈 봉투를 차 앞바퀴 밑에 넣어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경감이 "돈을 거기다 두면 어떡합니까. 우체통에 넣겠습니다"라고 하자 "내 말 안 들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3분가량이 지나자 선글라스에 모자를 쓴 외국 남성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타났습니다.
이 남성은 경찰들이 바로 옆 카페와 주차장 등에서 잠복근무를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더니 경계심을 풀고 봉투를 둔 차량으로 다가갔습니다.
경찰이 곧장 말레이시아 국적의 이 남성을 체포하면서 2시간여 만에 이들의 범행은 미수로 막을 내렸습니다.
비록 보이스피싱 조직의 몸통 격인 해외 콜센터까지 붙잡진 못했으나 이날 강릉지역에서만큼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8일)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대면 편취 수법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도내에서 발생한 대면 편취형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7년 9건, 2018년 25건, 2019년 64건으로 매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피해액도 2017년 3억원에서 2018년 5억원, 2019년 21억3천만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올해는 4월까지 무려 82건이 발생해 26억6천만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강원경찰은 금융회사의 통장 개설 요건 강화와 지연 이체제도 등으로 대포통장 사용이 까다로워지고, 해마다 단속이 증가하면서 대면 편취형 범죄가 늘어났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부서 간 업무의 경계 없이 모든 부서가 범죄첩보 등을 공유하며 보이스피싱 범죄에 공
지난 3월에는 홍천경찰서 생활안전계 직원이 보이스피싱 범죄첩보를 지능범죄수사팀에 알려 수거책을 붙잡아 구속했습니다.
강원경찰은 "금융기관이나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은 어떠한 경우든 전화로 금품을 요구하는 일이 없으므로 이런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가까운 은행이나 112에 전화해 상담을 받으라"고 당부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