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따라가기 더 벅차요"…사이버강의에 시름하는 장애 대학생들

↑ '청각장애 학생 학습권 보장하라' [사진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여대에 다니고 있는 청각장애인 김예지씨(가명·20)는 이번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지난 일주일 동안 들었던 사이버강의가 한 학기 내내 연장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듣고 있는 사이버강의 중 교양과목 일부에 대해서만 속기 지원을 받고 있다"며 "실습 과정이 포함된 전공과목들은 별도 도움없이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해 교수님 말씀은 전혀 듣지 못한 채 (옆에서 같이 들은) 엄마가 요약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올라오는 과제만 하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주요 대학의 사이버강의 등 비대면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대학 장애학생들은 학습지원 미비로 학습권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일선 대학에 '재택수업 운영에 따른 장애대학생 지원 안내' 공문을 여러차례 보냈지만 각 대학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이 제각각이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20일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국내 장애대학생 재학생은 작년 기준 471개 학교에서 총 9653명에 달한다. 신체 이동에 제약이 있는 지체 장애인과 중추신경 손상으로 인한 뇌병변장애인, 시각·청각·언어장애인 등이 해당한다. 교육부는 이달초 원격수업 과정에서 수어통역사·속기사·점역사 등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선 대학에 권고하고 이번 학기에 한해 장애학생을 위한 자막텍스트 제작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애학생들은 정부 지침,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날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한국농아인협회 등 6개 단체는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에 "모든 강의에 자막과 수어 통역을 의무 제공하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촉구했다. 진정인으로 참석한 나사렛대학교 학생 구윤호 씨(21)는 "학교에서 강의 영상에 자막을 삽입하고, 유튜브에 수어 통역을 올려주는 등 지원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자막 지원이 늦어 비장애 학생에 비해 진도가 뒤처진다"며 "전문 도우미가 아닌 일반 도우미가 자막이나 수어 통역을 담당해 타자·수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원격수업 자체가 경제적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장애인들에게 알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은 "코로나19 사태에 앞서 사이버대학에서 이미 유사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아직도 컴퓨터나 인터넷 등 기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장애인 가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격수업만으로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건 무리"라고 주장했다. 또 "지체장애인 중에는 활동지원사가 방문하지 않으면 컴퓨터를 혼자 켤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장애학생에 대한 지원 폭이 더 넓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일선 대학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공백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관계자는 "정부부처에서 대책을 제시해도 결국 수행 주체는 일선 대학"이라며 "현재 각 대학의 장애학생 지원계획을 다 받아보고 미흡한 대학에 보완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진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