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17일 수도인 메트로 마닐라를 포함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천700만명이 거주하는 북부 루손섬이 통째로 봉쇄되면서 불안해진 한국 교민과 관광객들이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귀국 비행기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필리핀 당국이 루손섬 봉쇄 후 72시간(19일 자정) 내에만 외국인 출국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해 18일부터 현지 교민들이 다소 마음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이 국토교통부, 한국 국적 항공사들과 협의해 현지발 한국행 여객기를 대형 기종으로 변경하고 항공편을 늘려 26일까지 5천석 이상을 확보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지 사정이 점차 심각해져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18∼19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30명 나와 누적 확진자가 217명으로 늘었고, 사망자도 3명이나 추가돼 치명률이 8%에 육박한 상태입니다.
또 현지 의료 체계와 시설이 열악하고 코로나19 진단 키트가 부족한 상황이라 드러나지 않은 환자가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GMA 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사리오 베르게이어 보건부 차관보는 오늘(20일) "진단 키트 4천개가량이 추가로 반입됐다"면서도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더라도 증상이 없고 고위험군이 아니면 바로 검사를 받을 필요 없이 우선 14일간 자가격리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11개 민간 대형병원도 전날 연대 서명한 대정부 호소문에서 "놀랄 정도의 의료진이 14일간의 격리에 들어갔고, 응급실로 몰려드는 검사 대상자들이 매일 늘어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이외의 중증 환자들을 위한 병실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민간 병원들은 "코로나19 치료 전담 병원 1∼2곳을 지정해 자원을 집중하지 않으면 의료 체계가 곧 붕괴할 우려가 있고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란시스코 두케 보건부 장관은 오늘(20일) 병원 두 곳을 코로나19 진단 및 치료 전담 병원으로 지정했습니다.
지역사회 봉쇄도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을 제외한 자택 격리가 핵심인 정부 차원의 봉쇄령 외에도 각 지방 자치단체가 추가 봉쇄 조처를 해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됐고, 기초 자치단체인 바랑가이 일부는 아예 출입을 차단한 곳도 있다고 현지 교민들이 전했습니다.
봉쇄가 장기화해 서민들이 생계를 위협받으면 강·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한국 교민들이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가 22일부터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해 현지에 남은 교민들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생업을 일시 중단하고 필리핀에서 나갔다가는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관광객과 유학생, 은퇴 비자로 현지에 있던 교민들은 다 나갔거나 나갈 예정이지만, 현지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교민들은 이번에 나갔다가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애초 한국행 항공권이 순식간에 매진됐는데 (외국인 입국 제한 조처가 발표된) 어제부터 여객기당 평균 20석가량 여유가 생겼다"면서 "출국 민원은 없어지고 입국과 관련한 문의가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인회 관계자도 "우리 교민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현지에 남아 있게 되는 교민들을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루손섬 봉쇄 이전에 필리핀 전역에 8만5천명가량의 한국 교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루손섬에는 3분의 2인 5만∼6만명이 체류하는 것으로 한국대사관과 한인회가 파악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