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 서울고법 305호. 재판 시작을 앞두고도 법정에 원고와 피고 측 대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법정 좌측에 설치된 스크린에 흰색 헤드폰을 쓴 원고측 대리인과 화면을 응시하는 피고측 대리인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러나 재판이 취소되거나 대리인들이 재판에 늦은 것은 아니었다.
곧 재판장인 김형두 서울고법 민사5부 부장판사(55·사법연수원 19기)가 마스크를 쓴 채 웹캠이 달린 노트북 앞에 앉았다. 김 부장판사가 호명하자 화면 속 원고와 피고측 대리인이 대답하며 서울고법의 첫 화상 재판이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법정 풍경을 이렇게 바꿨다.
김 부장판사가 "전자소송 기록을 띄우겠습니다"라고 지휘했고 그에 따라 스크린에는 수시로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양 측 대리인들이 각자 기록에 대한 의견을 밝힐 때 스크린은 다시 이들을 비췄다. 김 부장판사가 소송 쟁점을 정리할 때 대리인들은 화면 밖의 사건 기록을 보듯이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대리인의 발언 속도와 실제 입모양에 다소 시차가 있었지만 재판에 문제가 생길 수준은 아니었다. 재판은 20여분 간 진행됐다. 김 부장판사가 '재판을 종료하시겠습니까'가 표시된 창에서 '예'를 누르며 재판은 마무리됐다.
지난 2일 서울고법은 각 재판부에 화상재판시스템을 활용해 대면 접촉 없이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이번 재판은 코로나19로 법원이 임시 휴정기에 들어간 뒤 첫 화상재판이다. 서울고법은 화상재판 범위를 더욱 넓혀나갈 방침이다. 5일과 6일에는 서울고법 민사37부(부장판사 권순형)와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기우종)의 화상재판이 계획돼 있다. 특히 민사37부는 법정이 아닌 판사 사무실에서 스크린 없이 자신의 PC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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