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주택이나 상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면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합의를 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재판까지 갈 필요 없이 분쟁을 끝낼 수 있는 편리한 제도지만, 조정 절차 시작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데요.
어떤 문제가 있는건지 전민석, 이현재 기자가 연속 보도합니다.
【 기자 】
직장인 박 모 씨는 전세보증금 문제로 집주인과 씨름하던 지난 겨울을 잊지 못합니다.
보일러 배관에서 녹물이 줄줄 샜지만 집주인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 인터뷰 : 박 모 씨
- "(집주인이) 묵묵무답이에요. 너희가 알아서 하란 식이야. 방을 빼달라 그랬더니 주인분이 그럼 너희가 알아서 빼라 이거예요."
말다툼 끝에 박 씨가 분쟁 조정을 신청했지만, 조정 절차는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자영업자 박 모 씨도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건물주의 갑작스런 퇴거 요구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 인터뷰 : 박 모 씨
-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건물주가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 나갈 준비하라' 이러더라고요."
현행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에 맹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 스탠딩 : 전민석 / 기자
- "현행법상 임대차분쟁조정절차는 신청과 동시에 개시되는 것이 아니라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할 때만 시작됩니다. 피신청인이 거부하거나 아무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조정 신청 자체가 각하 종결돼 사라져버립니다."
▶ 스탠딩 : 이현재 / 기자
- "올해 신청된 주택 분쟁 조정 중 29%만이 조정 절차가 시작됐고 상가 분쟁의 경우 그보다 더 낮은 23%를 기록했습니다. 조정 절차 자체가 별 효과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같은 기간에 진행된 주택 분쟁의 경우 95%가 합의를 봤고 상가 분쟁 조정실패율도1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피신청인에게 분쟁 조정 절차 시작의 키를 주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 인터뷰 : 최재석 / 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
- "거의 대부분의 조정제도는 어떤 당사자가 조정을 신청하면 상대방의 조정에 응하는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 절차는 일단 개시하도록…."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는 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지만, 3년 넘게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현아 / 자유한국당 의원
- "(법안 제정 당시) 즉시 개시라는 걸 하지 않아도 당연히 대응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알고 법을 만든다면…."
분쟁을 해결하라고 만든 분쟁조정위원회가 제몫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시급합니다.
MBN뉴스 이현재입니다.[guswo1321@mbn.co.kr]
영상취재 : 안석준 기자·김영호 기자·한영광 기자·김광원 VJ
영상편집 : 서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