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에는 옛 대우맨들을 비롯해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김 전 회장은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를 재계 2위까지 만든 경영의 신이었지만, IMF 외환위기로 그룹이 해체된 후 한때 도피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냈습니다.
이상주 기자입니다.
【 기자 】
「#1. 30세 신화의 시작」
중견 무역업체에서 근무하던 '청년 김우중'은 1967년 만 30세에 대우실업을 창업하면서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 스탠딩 : 이상주 / 기자
- "대우는 1967년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10평 공간에 직원은 5명, 자본금 500만 원이었습니다."
「#2. 30년 만에 재계 2위로」
설립 첫해 신축성 있고 매끄러운 직물인 트리코트 한 품목만으로 58만 달러 수출에 성공해 '트리코트 김'이라는 별칭이 붙은 김 전 회장.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고 1975년 종합상사 시대를 열면서 급성장 가도를 달렸습니다.
기계와 자동차, 전자까지 진출한 대우는」창업 30년 만에 자산 총액 76조 원의 재계 2위로 성장했습니다.
▶ 인터뷰 : 백기승 /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 "회장님도 워커홀릭이었고 저희 대우 사람들도 일을 많이 했습니다."
「#3. 회장님에서 도망자로」
하지만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습니다.
차입경영에 의존해오던 대우가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1999년 8월 그룹이 끝내 해체된 겁니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5년 넘게 잠적했고 2005년 한국에 돌아온 뒤 복역하다가 특별 사면됐습니다.
말년에는 베트남 등에서 글로벌 청년사업가를 키우는 데 주력하기도 했지만 끝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MBN뉴스 이상주입니다.
영상취재 : 조영민 기자
영상편집 : 송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