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고등학교 기말고사에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비판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느꼈을 감정'을 묻는 질문이 출제됐다. 정답은 '배은망덕'이라는 4자 성어였다. 야당 의원 아들이 낸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서는 '유무무언'을 정답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치편향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교사는 '신중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5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전남 여수의 한 고등학교 한문 교사 A씨는 지난 3일 치러진 2학년 기말고사에 현 정부 지지층 시각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는 문제를 다수 출제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A교사는 지난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조국 후보자를 향해 공격적으로 쓴소리를 하자 금 의원에게 조 후보자 지지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는 언론 기사를 지문으로 싣고, 조 전 장관의 심경을 4자 성어로 물었다. 정답은 '배은망덕' 이었다. A교사가 제시한 기사에는 조 전 장관이 금 의원의 서울대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는 점이 포함돼 있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한 부정적인 문제도 출제됐다. 지난 9월 7일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 가수 장용준 씨가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는 기사와 장 씨가 같은 달 27일 불법유턴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 기사를 지문으로 제시하고 장 의원의 처지를 4자 성어로 물었다.
해당 교사가 의도한 정답은 '유구무언' 이었다.
정답을 도출하는데 직접 관련이 없는 박근혜 정부 관련 부정적인 지문도 발견됐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한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의 SNS 글과 '민중은 개·돼지'라고 한 나향욱 전 교육부 국장의 발언을 소개한 언론 기사를 지문으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뜻의 사자성어를 한자로 쓰시오'라고 출제했다.
여당이 주로 내세우는 국회 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부각하는 질문도 있었다. 한 문제는 '국민 10명 중 8명은 국회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는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지문으로 제시한 후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는 여론이 바라보는 국회의원에 대한 시각으로 가장 적절한 사자성어는 어느 것인가?'라고 물었다. 정답은 '무위도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의 장외투쟁, 상임위 출석거부 등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여당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란이 된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는 이날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이 2022년 대선에는 당장 유권자가 되니 시사에 관심 가지라는 의도로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며 "충분히 숙고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후회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문제에 분노한 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책임을 면하고 싶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출제 교사는 지난 해부터 해당 학교에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은 한 적이 없다고도 밝혔다.
논란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해당 교사는 출제 문제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국 전 장관 편을 들어 시험문제를 출제한 건 아니었다"며 "조 전 장관이라면 '인사청문회에서
장 의원 아들 음주운전 문제를 낸 것에 대해서도 "여당 관련 문제만 내면 중립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의식해, 야당의 장제원 의원 얘기도 실었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시험문제를 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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