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시행사 대표 A씨는 서울 양천구를 비롯해 서울 전역 10여 곳에 대형 빌딩과 아파트 단지 등을 건설·분양하며 회사를 일궈왔다. A씨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현 양천구청장의 남편 이제학 씨(전 양천구청장)에게 2014년 7월께 3000만원을 건넨 사실이 있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 처리 등을 신속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돈을 줬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이씨에게 건넨 금품이 아내인 김수영 구청장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천구청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그가 울분을 토로한 사연은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지하 5층, 지상 31층짜리 아파트 건물에서 시작한다. 2010년께 이 아파트 신축사업을 진행한 A씨의 건설사는 준공 허가가 떨어지기 전인 2014년 9월 양천구청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사업부지 인접도로에 위치한 불법 가건물을 사업주인 A씨한테 철거하라는 것이었다.
A씨 측은 사업 착수에 들어선 2010년 10월께부터 해당 무허가건축물을 철거해줄 것을 양천구청에 수차례 요청했다. 양천구청은 2012년 6월 "불법 점유자에게 수차례 자진 정비하도록 행정조치했고, 관련 규정에 따라 대집행 등 정비방안을 검토 조치하겠다"며 공문을 통해 철거가 본인들의 소관 업무임을 분명히 했다. 감사원 또한 2012년 A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제보한 건물은 양천구에서 보상을 조건으로 철거를 추진할 예정이고, 보행자 통행에 지장 없도록 (양천구가) 조치할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A씨에 따르면 2014년 9월께 양천구는 무허가건축물 철거를 위한 민사소송을 A씨 업체가 부담해 진행하라고 돌연 책임을 떠넘겼다고 한다. 그 당시 양천구는 "도시계획시설(철도, 정거장, 도로) 사업이 본 건축물 준공을 득하기 전까지 완료될 수 있도록 사업시행에 철저를 기해주길 바란다"는 공문을 A씨 측에 보냈다. 공문에서 양천구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불법 가건물이 세워져있던 땅에 도로를 내기 위해서는 이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결국 관련 비용을 A씨 업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양천구는 2014년 10월에도 "(불법) 점유자에게 보상금에 대한 압류 등 채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사전 통보하라"며 관련 사안을 A씨 측에 떠넘기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A씨는 소송·철거 비용 등으로 2억2000만원을 써야했다.
양천구청 측은 A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구청도 행정소송을 통해 불법 가건물을 철거하기 위한 노력을 다 했지만 패소했다. 준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 가건물 점유자가 A씨에게 합의금을 과도하게 요구해 다급해진 A씨가 먼저 민사소송을 본인들의 비용 부담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송 비용을 본인들이 부담하겠다는 확인서까지 구청에 보냈다"며 "소송과 관련해 구청이 증빙서류를 수집·검토하고, 승소 판결 이후 강제집행 과정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소송이 구청장 명의로 진행됐음에도 비용을 민간사업자가 부담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해당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준공권을 빌미로 소송비용과 철거비용 등을 A씨에게 전가했다면 이는 직권남용 및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준공 허가권을 구청이 쥐고 있는데, 소송비를 안 낼 수 있겠느냐"며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1년 만에 철거 완료했는데, 구청은 지난 30년 이상 손 놓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이 아파트 건물 지하 1층 상가 분양을 두고 구청과 갈등을 빚은 뒤 모든 것을 폭로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A씨 건설사는 이곳 상가에 농협하나로마트를 들여오기 위해 농협유통 측과 1년여 간 협상을 진행해왔다. 농협유통이 내건 계약 조건은 A씨 측이 구청으로부터 대규모마트 영업 허가를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청은 대형마트가 입점하면 주변 상인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이들과 사전 협의를 하라고 요구했다.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려면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고, 유통산업발전협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A씨는 "지역 상인들과의 협의가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열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님에도 구청은 이것이 마치 의무사항인 것처럼 상인들에게 얘기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이 합의 조건으로 20억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양천구청은 "유통산업발전법 규정에 근거해 이해관계자와 협의할 것을 권고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사업길이 꽉 막힌 A씨는 최후의 보루로 이 전 구청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답은 "그깟 20억원이 아까워서 못 내놓느냐
[조성호 기자 /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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