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는 섬이나 산간벽지 같이, 멀리 시내에 있는 의사를 직접 만나러 나오기 힘든 오지의 환자들이 전화나 문자, 이메일이나 영상통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건데, 현행법상 의료진끼리의 원격의료는 합법이지만 의료진과 환자 간은 불법입니다. 때문에 정부는 우선, 전국 41개 의료 취약지를 대상으로 의사와 현지의 공중보건의, 또는 의사와 현지 간호사 간 협진을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시작도 못하게 됐습니다.
방문 간호사들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들이 직접 측정한 혈압과 혈당 기록을 의사에게 전송하고 의사의 처방전을 대리 수령해 처방약도 환자에게 전달하는데…. 이를 두고 의사들은 간호사가 환자를 직접 만난다는 게 불만, 약사들 역시 약에 대한 비전문가인 간호사가 약 처방을 대리한다는 게 불만인 겁니다. 말 그대로 제 밥그릇만 챙기는 거죠.
이미 1990년대부터 원격의료를 합법화한 미국은 원격 진료 횟수가 해마다 늘어 대면 진료를 능가할 정도로 관련 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만성질환자의 원격 모니터링 사업에 정부가 수백억 원을 투입해 전폭 지원하고 있지요. 물론 각 나라마다 의료 상황이 다르고 시스템도 다릅니다.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합의도 필요한 거고요.
그럼에도 무려 13년 전에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9년 전에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음에도, 아직까지 시범사업 결과를 둔 제대로 된 논의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고, 법안은 논의조차 안 돼 폐기와 발의를 반복하고 있는 게 현실.
진척 없는 대책을 추진하는 정부도, '일관성 있게' 반대만 하는 의료계도, 변화된 시대에 우리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기반을 제대로 조성하지 못했다는 데에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원격의료는 국민 건강에 위해 되는 일이다.' 의료계는 늘 이렇게 말하지요. 되묻고 싶습니다. 원격의료가 진정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되는지, 또 환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뭔지, 그들에게 직접 들어본 적은 있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