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공격축구하면 시민구단도 전석매진 할 수 있죠"

↑ 조광래 대구FC 대표 [사진 = 이충우 기자]

프로축구 K리그 무대에서 '시민구단'은 '약팀'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모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받는 기업구단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해야 하니 시민구단의 예산은 늘 열악하다. 그렇다보니 우승 경쟁은 커녕 하부 리그 강등을 피하기에 급급한 것이 대부분 시민구단들의 사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으로 창단된 대구 FC는 '예산이 부족한 팀은 좋은 축구를 펼칠 수 없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지난 해는 한국 축구 최강팀을 가리는 FA컵에서 창단 최초 우승컵을 차지했고, 올 시즌 새로 문을 연 전용구장 DGB대구은행파크는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대구 시민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골키퍼 조현우가 프랜차이즈 스타로 관중 몰이를 이끌고, 세징야와 에드가 등 외국인 선수들도 리그 최고의 용병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변화를 앞장서서 지휘하고 있는 조광래(65) 대구 FC 단장 겸 사장을 만나러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직도 강팀되려면 갈 길이 먼데 무슨 인터뷰냐"며 웃는 조 단장을 푸른 잔디 그라운드 옆에 앉혀놓고 선수에서 감독으로, 또 감독에서 행정가로 연이은 변신에 성공한 비결을 들어봤다.

↑ [사진 = 이충우 기자]

- 최근 한국 축구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U-20 월드컵 결승하는 날만큼은 나 자신도 팬이 되어 지켜봤다. 우승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젊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뿐 아니라 경기 운영 능력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줘서 희망적이더라. 가능성있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한국축구에 절실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다음에는 우승할 수 있도록 젊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는 우리 대구부터 노력해야겠더라.
- 대구 돌풍이 K리그 인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대구 축구는 경기 템포가 빨라서 흥미를 많이 느끼시는 것 같다. 안드레 감독과 선수들에게 늘 현대 축구는 속도와의 전쟁이고, 속도를 못 살리면 팬들 호감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빠른 축구를 하기 위해 항상 몸을 앞으로 향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세와 생각의 문제다. 연습에서 백패스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친다(웃음).
-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선수, 그리고 국가대표까지 맡았던 지도자인데 지금은 축구 행정인이다
▷국가대표 감독때보다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선수로서는 팬들에게 좋은 장면 보여주는게 보람이었고, 감독으로는 내가 키운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릴 때 기뻤다. 지금은 한 발 뒤로 빠져 여건을 만들어주고, 팬들과 같이 응원하는 입장이 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선수와 감독, 행정까지 모든 과정을 거쳐보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 사실 국내 축구계에서 시민구단은 하위권, 2부리그의 이미지가 강하다.
▷ 구단마다 환경은 다르겠지만 대구에 와서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일을 했다. 권영진 대구 시장님과 후원자 모임인 엔젤 클럽 등에서 항상 도와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다행이다. 구단 내부에서도 소통이 잘 되고 있다. 축구인 출신 행정가라고 해서 현 감독을 꼭두각시로 만들면 안되기때문에 조심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경험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걸 간섭이라고 생각하면 불화가 되지만 안드레 감독과 이병근 코치 모두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이라 소통에 문제가 없다.
- 일단 지난 해와 올 시즌 성적이 좋다. 지금 성적에 만족하는가.
▷ 지도자로서 팀을 맡을 때는 보통 3년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웠다. 3년차에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2부 리그까지 떨어졌다가 승격했고, 작년에는 FA컵 우승을 했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작년 FA컵은 단기전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낸거고 올해는 상위 스플릿에 올라서서 내년 준비를 하는 시기다. 내후년 정도면 K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될 것 같다.

↑ [사진 = 이충우 기자]

- 유망주를 잘 키워 성적을 내는 과거 감독 시절의 특성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다.
▷ 자질이 있는 선수가 처음부터 비싸고 좋은 선수인 것은 아니다. FC서울 감독 시절에 김동진, 최태욱 등 뽑아서 잘하길래 그 다음에는 중학생들까지 살펴봐서 이청용, 고요한, 고명진 등 뽑았는데 다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했다. 경남에서 감독을 하던 시절에도 윤빛가람, 이용래, 김주영 등 키우면서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불려갔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도 재산이 됐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데려와 키우고 우승에 도전하는 팀을 만들테니 인프라를 만들어달라고 권 시장님 등을 설득했는데 그 부분이 서로 합의가 잘 된거다. 지금 우리 팀에 있는 김대원이나 정승원 같은 선수들도 2년 정도 지나면 몸도 더 단단해지고 경험도 쌓아 전성기 기량을 보여줄 것이다.
- 외국인 선수 선발도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외국인 선수들을 어떻게 뽑는지 듣고싶다.
▷ 브라질이나 유럽에 스카우터를 자주 보낼 수가 없어서 감독과 코치와 함께 영상으로 우선 확인을 한다. 편집된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풀타임 경기를 봐야한다. 그리고 뭘 잘하는지보다 단점 위주로 관찰한다. 단점이 없으면 이미 유럽에서 뛰겠지. 단점을 보면서 이게 고칠 수 있는건지 아닌지를 본다. 공격형 미드필더 세징야는 처음에 하이라이트만 보고 잘 알 수 없어서 풀타임 영상을 찾아보면서 계약했고, 공격수 에드가는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전북 현대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는 것을 보고 알아봤다. 부리람이 내보내려 해서 우리가 연봉 반절 부담하는 조건으로 데려왔다. 또 아시아쿼터로 선발한 일본 선수 츠바사는 어릴 때 배낭 하나 메고 유럽에 도전하던 친구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술이 좋고, 덩치 큰 유럽 애들이랑 경쟁하니 아시아 무대에서 못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계약했다. 비록 지금은 부상을 입은 상태지만 중원에서 센스를 보여줬다.
- 결국 성적과 인프라가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을 누리고 있다. 낡은 시민경기장을 DGB대구은행파크로 개축해 야구도시 대구를 축구도시로 변모시켰다.
▷ 지금 당장 우리가 관중 숫자가 늘었다지만 야구와 경쟁 관계는 아니다. 삼성 라이온즈도 빨리 성적 회복해서 대구 시민들이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이 큰 도시에 스포츠팀이 많아야 한다. 야구도 축구도 모두 즐기는 스포츠 도시가 되면 좋겠다.

↑ [사진 = 이충우 기자]

- DGB대구은행파크를 건설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 건축가와 축구인이 열심히 소통한 덕분이다. 설계를 할 때 보니 아무리 건축을 잘하는 분들도 축구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축구장을 40년 본 내가 건축가와 함께 독일과 미국을 가서 근래에 지었다는 경기장들을 견학했다. 비교를 해보니 미식축구나 야구 위주의 미국식 경기장은 공이 위로 뜨기에 약간 눕는 각도로 짓고, 유럽 축구경기장은 공이 관중 시야 밑에 있으니 내려보는 각도로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붕도 중요하다. 비를 막아주는 역할뿐 아니라 관중들 집중력도 높여주기 때문이다. 경남에서 감독을 할 때도 창원축구센터 지붕 지어준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나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불려가고, 당시 구단주이던 김태호 경남 도지사는 국무총리 후보가 되는 바람에 지붕을 올리지 못했다. 그 얘기를 권 시장님과 시 의회에 했더니 시의회 의장이 들어주셨다. 또 미국 NFL 경기장에가보니 알루미늄판을 바닥에 깔아서 발을 구르며 응원하고 있었다. 나도 따라해보니 배까지 울리는게 이거 신이 나겠구나 싶어서 도입하자고 했다.
(DGB대구은행파크는 그라운드와 관람석 사이 거리가 7m로 가깝고 지붕이 설치되어 있다. 또 알루미늄 바닥 관중석이 있어 응원 소리가 역동적으로 울리는 등 건축적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 실제로 보니 경기장 사이즈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 1만 3000석 정도 규모고, 나중에 3000명 추가 증축이 가능하게 설계를 했다. 우승 도전하는 팀이 되면 그 때 증축하려고 한다. 그래서 2,3년 정도 뒤를 보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안 늘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 규모로 건설했더니 올 시즌에 벌써 6번이나 매진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경기장 옆 입구를 가려놨는데 지금은 경기장 내부가 보이게 열어둔다. 그래야 매진 때문에 경기 못본 사람이 경기를 슬쩍 보고 다음부터는 예매할 것 아닌가. 서울이나 전북, 수원 등 인기 팀이 올 때는 원정팀 팬들도 '대팍' 구경하러 많이 오길래 원정팀 구역도 넓게 풀어주고 있다. 그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 구시가지였던 경기장 근처가 공원화되고 인근 주택 가격도 오르는 긍정적 외부효과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다.
▷이 근방 일대가 공원이 됐다. 대구시에서 스탠드 줄이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공원화를 해놨다. 도시재생산업 차원의 일이라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진짜 만족스럽다는 이야기 많이 하더라. 예전에는 주위가 저녁이 되면 캄캄하고 발전에 뒤쳐진 동네라 낡은 아파트 재개발도 안 됐는데 지금은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 K리그 최초로 경기장 네이밍 라이트를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스폰서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 클럽도 자생력을 가져야한다. 지도자 연수하면서 영국, 프랑스, 이태리, 브라질 다 가봤다. 그런 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더라. 수익이 되는 일을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메인 스폰서인 대구은행에 제안을 먼저 넣었다. 우리가 5년을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고민하다가 1년 15억에 명칭사용권을 샀는데 지금 하길 잘했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니 더 올려주지 않을까 기대도 한다. 그만큼 우리 구단이 잘해서 노출이 많이 되도록 해야한다.
-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 축구를 아는 행정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생각한다. 다른 구단들도 따라하려고 한다니 기쁘다. 침체됐던 한국 축구를 시민구단이, 대구 FC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선 평균 관중 1만명 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더 많은 경기를 매진시키도록 좋은 축구를 보여줘야 한다.
■ He is...
조광래 대표는 195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포항제철과 대우로얄즈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프로축구 K리그에서 2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정교한 패스 능력을 선보여 '컴퓨터 링커'로 불렸던 조 대표는 1986 멕시코 월드컵 등에 출전했다. 1987년 은퇴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조 대표는 트레이너, 코치 등을 거쳐 대우로얄즈와 안양 LG(현 FC 서울), 경남 FC에서 감독으로 일하며 유망주 발굴에 탁월한 면모를 보여줬다. 2010년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대구FC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2부리그에 있던 팀을 FA컵 우승팀이자 1부리그 다크호스로 끌어올렸다. 조 대표는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초로 선수, 감독, 행정가로 모두 우승을 맛본 인물이 됐다.
[이용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