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훈민정음 상주본, 국가가 회수 가능"…소재지는 오리무중

훈민정음 상주본을 갖고 있다는 배익기 씨가 문화재청의 서적 회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자인 국가(문화재청)가 상주본 확보를 위한 강제집행에 나설 명분이 더 커졌지만, 상주본 소재지는 배 씨만이 알고 있어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배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이의 소송 상고심에서 배 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오늘(15일) 밝혔습니다.

배 씨는 문화재청이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민사판결을 근거로 상주본 회수에 나서려 하자,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상주본 소유권 논란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서 배 씨는 2008년 7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면서 상주본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지만, 상주지역 골동품 판매상인 조 모 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논쟁이 촉발됐습니다.

이에 조 씨는 배 씨를 상대로 물품 인도청구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1년 5월 조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판결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조 씨는 2012년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숨져 소유권은 국가에 있는 상태입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민사판결을 근거로 배 씨에게 반환을 요구해왔지만, 배 씨는 이에 불복해왔습니다.

배 씨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배 씨가 책을 훔쳤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배 씨는 "상주본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내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며 국가의 소유권을 인정한 앞선 민사판결의 집행력이 배제돼야 한다고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1·2심은 "무죄판결은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 부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배 씨 청구를 기각했고, 이 같은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확정됐습니다.

이번 판결로 문화재청은 상주본 확보에 나설 법적 근거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배 씨만이 상주본의 소재지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회수 가능성은 작게 점쳐집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 관계자는 판결 직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장 상주본 회수를 위해 강제집행에 나설 계획은 없다"며 "배 씨를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배 씨 역시 "홀로 한 소송이어서 이번 결과는 의미가 없다"며 "소유권을 돌려받는 추가 소송을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상주본은 일부가 공개됐을 뿐 배 씨가 소장처를 밝히지 않아 1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 때문에 상주본의 훼손 및 분실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모습을 감춘 훈민정음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 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당시 일부 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배 씨는 화재 당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훈민정음 상주본을 꺼냈고, 이후 자신만 아는 곳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