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다친 데다 겁이 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주민들이 칼에 찔렸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달려갔다…. 그게 관리사무소 직원인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온몸이 피투성인데도 다친 주민들을 전부 병원에 보낸 뒤에야 구급차에 올라탔다. 이 청년, 의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사건은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습니다. 범인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뛰쳐나오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치는 참혹한 사건이었죠.
관리사무소 막내직원인 정연섭 씨도 그 피해자입니다. 안인득이 휘두른 칼에 얼굴을 크게 다친 그는 지금 제대로 음식을 씹지도 못할 정도로 안면이 마비됐고, 사건 현장에 나갈 때면 당시가 떠올라 온몸이 경직되는 심각한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은 당연히 하기 힘들죠.
그래도 근무 중 사고를 당한 거니 당연히 산업재해 보험처리가 될 줄 알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손과 발이 멀쩡하니 일을 할 수 있다며 거부당한 겁니다. 또 남을 돕다 다친 게 아니라 범인이 휘두른 칼에 다친 거라 의사상자도 되기 힘들었고요.
거기다 계약직이라 몇 달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죠.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이미 후임까지 구해진 상태, 몸이 좀 낫는다 해도 돌아갈 자리가 있을지 고민입니다.
다행히 근로복지공단에서 재심사를 해 요양급여는 받게 됐습니다만,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치료비에, 실직 위기까지 닥쳤으니, 말 그대로 남은 건 상처뿐입니다.
정연섭 씨 같은 의인이 있어 아직은 세상 살만하다고들 하는데 당사자인 의인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하는 건지, 꿈을 좇아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딘 20대 청년에게, 아니 의인에게 우리 사회가 해 줄 수 있는 건 딱히 없는 것인지 깊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