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새 정부의 첫 업무 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공무원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개혁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하라는 거였죠.
하지만 실상은 완전 다릅니다. 요즘 공직사회에서는 개혁은커녕, 할 수 있는 일조차 기피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거든요. 정부가 경계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이 많아지고 있는 겁니다.
하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해가 됩니다. 지난 정부 정책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교육부는 과장급 실무자까지 수사 의뢰 대상이 된 지 오래됐죠, 전 정부의 한·미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서는 직위 해제된 대사도 있고, 위안부 합의에 참여했다고 불려 들어온 외교관도 있습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과 관련해, 선배 서기관이 비망록을 쓰도록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죠. 다음 정권에서 문제가 될 경우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놓으라는 거였습니다.
이 정도니, 공무원들이 어떻게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고 싶어도, 정권이 바뀌면 차기 정부에서 추궁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말이죠.
비망록도 남기고, 상사의 지시도 녹음하고, 보안이 잘되는 메신저만 이용해야 그나마 안심일 정도인데요. 하긴 뭘 멀리서 찾겠습니까. 당장 환경부만 봐도, 4대강과 관련해, 생태계의 악영향이 보 탓이 아니라고 하더니, 정권 바뀌자 녹조의 원인이 모두 보 탓이라고 입장을 바꿨으니 말입니다.
물론 공직사회의 보신주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영혼이 있는 공무원'을 원한다면 그들이 소신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부터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현장 공무원들이 판단 내리기를 꺼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