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는 우리 국민만 참여한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들도 3·1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마운 외국인 친구들을 안병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3·1운동 이후 일제가 보복성 학살을 벌인 경기 화성시 제암리.
그 비극의 현장에 카메라를 든 캐나다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병원 교수로 우리나라에 입국했다가 동료였던 민족대표 중 한명의 부탁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운 인물입니다.
해외 정세를 담은 외국 신문을 비밀리에 전달하는 등 큰 도움을 줬던 그는 33명의 민족대표에 더해 '34번째 민족대표'로도 불립니다.
특히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직접 찍은 사진과 글들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딘 케빈 스코필드 / 스코필드 박사 손자
- "저는 할아버지가 한국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독립과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명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우리나라 땅에 묻혔습니다.
▶ 스탠딩 : 안병욱 / 기자
-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스코필드 박사는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붉은 벽돌이 특징인 오래된 서양식 주택 주변으로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딜쿠샤, 3·1운동을 알린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던 곳입니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당시 뉴스통신사 UPA의 서울 특파원으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전 세계에 처음 알렸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이로 인해 테일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100년 전 3·1운동의 그 순간, 우리에겐 든든한 '푸른 눈'의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MBN뉴스 안병욱입니다. [obo@mbn.co.kr]
영상취재 : 김영환 VJ
영상편집 : 오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