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3.1운동 당시 연초회사 노동자 땔감 숯장사꾼부터 시각장애인까지 다양한 계층 직업군이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8일 국가기록원이 발간한 '기록으로 듣는 100년 전의 함성, 3·1운동'에 따르면 3·1운동 참가자 중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은 농민(4941명·58%)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955명)과 잡화상(296명) 상업(274명) 교사(271명) 무직(229명) 머슴 및 납품팔이(189명)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수형자와 형사피고인 9059명을 종교별로 살펴보면 무종교가 5486명(60%)에 달해 처음엔 3.1운동이 종교계 인사 주도로 시작됐지만 점차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것을 엿볼 수 있다.
1919년 3월 19일 경남 진주장터선 기생들이 기생독립단을 조직해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1919년 3월 26일엔 경기 고양군 독도면서 마차꾼 김완수
신체장애도 독립의지를 꺾지 못하다. 전남 광주에 거주하던 이달근은 맹인으로 안마업에 종사하며 근근이 살고 있던 장애인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가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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