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나 특정 성향 판사의 인사 불이익에 직접 지시하고 관여했다는 의혹에 검찰이 조사시간을 대폭 할애하면서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들이 확보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오늘(13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그가 불법행위를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정황이 비교적 뚜렷한 혐의사실 조사에 우선순위를 뒀습니다.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청와대 협조가 절실했던 양 전 대법관이 직접 사안을 챙겼을 개연성이 큰 사건들입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 개입 의혹이 대표적입니다.
검찰은 강제징용 재판 진행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내부 정보를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에 귀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에서 송무팀을 이끌던 한모 변호사를 집무실 등지에서 최소 세 차례 만나 징용소송을 전원합의체에 넘긴다는 방침 등을 알렸다는 진술과 이같은 대화내용을 기록한 김앤장 내부 문건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개입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라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검찰은 조사 당일 오전부터 오후 4시 무렵까지 강제징용 재판 부분을 조사했습니다. 그날 전체 신문이 오후 8시 40분쯤 끝난 점을 고려하면 조사 시간의 절반 이상을 강제징용 재판개입 의혹에 할애한 셈입니다.
조사 당일 오후 11시55분쯤 귀가한 양 전 대법원장은 이튿날인 어제(12일) 오후 검찰청사에 다시 나가 조서가 진술한 취지대로 작성됐는지 꼼꼼히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을 이번 주 초중반 다시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사유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그 후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검찰로선 법원의 '소명 부족' 기각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앞두고 그의 공모 혐의를 직접 입증할 증거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양 전 대법원장 면담결과 내부문건 등이 검찰이 확보한 주요 물증으로 꼽힙니다.
강제징용 재판 관여 의혹 외에도 첫날 이뤄진 조사항목 대부분은 양 전 대법원이 관심을 갖고 직접 챙겼을 개연성이 큰 사안들로 이뤄졌습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에 개입한 의혹, 대법 판례를 깨고 긴급조치 피해자에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의 징계 추진 등이 대표적입니다.
같은 날 조사가 이뤄진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도 양 전 대법관이 직접 관련 문건에 결재 서명을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제시할 구체적인 '카드'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현재로선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적인 공모 혐의를 소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시각도 여전히 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 등 진술로 혐의를 사실상 부인하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증거만으론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원이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 기각 사유로 든 '공모 관계 소명 부족' 논리를 깨고자 검찰이 양 전 대법관의 직접적인 관여 정황을 밝히는 데 주력했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간접 증거만으로 이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