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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1030세대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운세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점쳐보고 위안받기 위한 젊은 층의 수요로 운세 시장도 함께 젊어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초 한국 점술 시장과 관련한 특집 기사를 선보였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점술 시장 규모가 37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추산했다. 우리 돈으로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2017년 한국 전체 영화산업의 규모가 2조 3200억여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점술 시장 규모가 영화산업보다 훨씬 큰 거대 시장인 셈이다. 그만큼 운세는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작게는 이사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결혼, 취업 등 인생의 중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점과 운세에 의지한다.
이 같은 경향은 젊은 층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12월 1030세대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10명 중 9명인 90%가 '운세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1년에 한 번 본다는 응답이 25.5%로 가장 많았고, 매일 본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10.8%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운세를 보는 이유로 막연한 호기심에(42.7%), 미래가 불안해 위안을 얻기 위해(22.9%), 스트레스와 고민을 덜기 위해(13.2%) 등을 꼽았다. 불안과 스트레스, 고민이 모두 하나로 얽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1030세대가 운세로 미래라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려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1030세대가 운세 산업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하며 운세 시장도 한층 젊어지고 있다. 운세를 보는 행위 자체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졌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운세 애플리케이션이 꼽힌다. 똑같은 설문 조사에서 모바일 앱을 활용해 운세를 본다는 응답이 30%에 육박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앱 스토어에 운세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자 운세 관련 앱만 수십 개가 쏟아져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유료 앱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무료로 제공돼 누구나 쉽게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그중 2만7000개에 육박하는 리뷰가 달린 대표 앱을 사용해봤다. 이름, 성별,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기재하자 오늘의 운세, 2018 토정비결·재물운·애정운, 이달의 운세, 평생 운세 등의 카테고리를 줄줄이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앱을 사용해본 결과 점집에 방문하기 꺼려지거나 시간을 내 운세를 보러 가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깔끔한 레이아웃 아래 충실히 짜여 있었다. AI가 손금과 관상을 봐주는 앱도 눈길을 끈다. 손바닥이나 얼굴을 촬영하기만 하면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AI를 통해 분석된 결과를 보여준다.
앱 이외의 특징적인 장소는 운세 테마 카페다. 타로 카페, 사주 카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컨셉 카페들이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홍대, 신촌 등 번화가와 대학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동종 사업이 성행 중이었다. 서울 대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종로구 익선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플리즈커피 사주&타로' 카페에 방문했다. 밖에서 볼 때는 일반 카페와 별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따뜻한 빛깔의 조명 아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많이 들어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평범한 가게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카페 끝쪽에 타로와 사주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 두 개가 마련돼 있다는 것.
플리즈커피 사주&타로 이경행 대표는 "사주나 타로를 보러 찾아오는 연령층은 10대에서 30대가 6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도 연령대가 높은 층이 많기로 손꼽히는 종로임에도 60·70대 고객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이 대표는 젊은 손님들이 묻는 질문은 대개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 세대가 공통적으로 묻는 건 대표적으로 애정운이나 재물운이고 10대는 진로나 대학 학과 선택, 20대는 취업 고민, 30대는 이직이나 직장 내 인간관계 등을 주로 묻는다"고 전했다. 학교 앞에 있는 타로 카페를 자주 방문한다는 대학생 홍성민 씨(23)는 "카페로 꾸며져 있다 보니 거부감도 전혀 없고,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다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게 운세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1030세대가 운세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정신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수성이 운세 시장을 확장시켰다고 분석한다. 사회의 시선 탓에 병원 가기가 꺼려지자 점집, 타로 집 등을 찾아 정신적, 정서적인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재미로 사주나 타로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공감을 얻고 위안을 받으려 많이들 찾는다"고 말했다. 취업난과 어려운 경
그러나 운세에 과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불안하거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마다 운세에 기대다 보면 개개인의 노력이 필수적인 것들을 소홀히 하거나 놓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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