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업무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물은 말입니다. 장관에게는 '최저임금 때문에 실직한 일용직들을 만나 원인이 뭔지, 한 번 제대로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라고도 했죠.
하지만 청와대의 이런 상황 파악은 많이 늦어 보입니다. 대통령의 질문과 관련된 통계는 이미 많이 나와 있는 데다, 시장에서는 전조증상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었거든요. 겉으로는 취업자 수가 10만 명 이상 늘어났지만,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은 오히려 9만 명 넘게 줄었고,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도 13만 명 가까이 급감했죠.
'반짝' 일자리는 늘었지만, 고용의 질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2.3%로 하향 전망했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의 인식은 달랐지요.
'기업의 기를 살리라며 정부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달, 우리 경제를 이끌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주요 정책담당자가 꺼낸 말입니다. 시장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위기의 본질을 남 탓으로 돌린 거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쓰여야 할 통계자료도 변명을 위해 사용됐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 90%',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돼 올바른 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수치에 근거한 것이냐는 지적이 쏟아졌고, 대통령이 인용한 통계에 숱한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따져보니 최저임금 효과를 분석한다면서 실직자와 자영업자는 쏙 빼고 취직자만 통계에 넣었다죠.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일자리 상황판'도 다시 짜여졌지만, 그 안에 있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적, 3대 공공기관 고용 현황, 상용 근로자 비중 등은 모두, 정부가 '긍정적 효과'로 부각시키고 있는 일자리 지표들입니다.
오늘은,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확대경제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이 의제로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청와대가 뒤늦게나마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다행이지만, 대통령이 국정 현안의 세부사항까지 다 챙기고 판단할 순 없지요, 그렇기에 참모들의 역할은 더 중요합니다. 어디서나 최악의 상황은, 무능과 진실을 외면하는 위정자들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죠. 청와대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