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서울지역 첫눈이 내리며 겨울이 부쩍 다가온 가운데, 시야를 가리는 눈과 곳곳에 얼어붙은 길을 만드는 겨울은 배달업체 종사자에겐 그저 지옥과 같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돌산마을 골목길에 위치한 빌라 앞에서 배달업체 라이더 A씨는 연신 "죄송하다"며 고객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이날 서울에 내린 첫눈 때문에 배달 시간이 지체될수록 A씨의 속은 타들어갔다.
A씨는 배달업을 한 지 20년을 훌쩍 넘은 베테랑 라이더지만, 겨울이 되면 걱정이 앞선다. A씨는 "다른 사람들은 눈이 펑펑 내리면 좋아라하는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눈이 오면 두렵기 시작했다"라며 "내린 눈이 얼기 시작하면 라이더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의 시작"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의 배달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언제 어디서나 주문을 해도 배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배달업 종사자들의 피, 땀, 눈물이 숨어있다.
겨울철은 특히 배달업 라이더에게 고난의 계절이다. 도로 곳곳이나 좁은 골목, 언덕에 있는 빙판길로 인해 미끄러지는 등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 제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나 넓은 골목은 그나마 제설작업이 돼 있지만, 소도로나 좁은 골목의 경우엔 쌓인 눈 그대로 빙판길로 변해 있는 곳이 많아 매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빙판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천천히 운전하면 되는데,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너무 위험하게 운전해 사고를 낸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배달업 종사자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오해다.
배달업체 종사자 B씨는 지난 1월 한파 속 밀린 배달을 하러 가다가 빙판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주위 행인들이 그를 도와주기 위해 다가왔지만, B씨는 "아, 콜라 쏟았으면 어쩌지"라며 소비자에게 전해줄 음식부터 걱정했다. 당시 사고로 그의 다리는 골절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B씨는 "배달 주문이 많이 밀려 빨리는 가야 하고 길이 얼어 있어 미끄러워서 속도는 낼 수 없고 악순환이 계속 됐다"며 "조금만 늦으면 '언제 오냐' '어디냐' 문자나 전화가 쏟아지니 압박감에 어떻게 안전운전을 하며 천천히 가겠나"라고 말했다.
배달원 한 명 당 하루 평균 배달 건수는 50~60건이다. 개인별 편차가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건당 3000원 남짓이 그들의 손에 떨어진다. 겨울철 위험이 많이 도사리지만, 라이더들에게는 배달업이 생계와 직결돼있기 때문에 겨울이라고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배달업 라이더들이 겨울철 위험에 노출돼있음에도 대부분 산재보험에도 가입이 잘 안 된 상태라는 점이다.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2016년 1만3000여 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배달대행업체 소속 배달원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에 해당돼 산업재해 보험 가입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배달업 종사자들은 겨울철에 특히 위험에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가격과 고용주의 눈치 때문에 산재에 가입하지 않는 라이더들이 많다. [사진 = 문성주 인턴기자] |
배달업 라이더 C씨는 "산재 가입이 돼 있지 않아 사고 시 모든 부담을 제가 안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행업체에 말해서 산재 가입을 요구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들어주지도 않을 게 뻔하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내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배달 대행 1위 기업으로 꼽히는 배달 IT물류 스타트업 '바로고(Barogo)'는 자사의 라이더들에게 산재보험 가입을 장려해 모든 라이더가 보험에 가입돼 있다(직영점 기준). 바로고 관계자는 "보험 가입 비용 측면에서 부담을 느끼는 라이더들을 위해서 자체 보험 상품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 바로고는 겨울을 맞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달 대행 기업들이 라이더를 고용할 때 산재보험 가입 등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문성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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