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경남 거제시 길가에서 폐지를 줍던 여성을 폭행해 숨지게 했던 가해자가 최근 법원에 '수상한'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그동안은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더니 검찰이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를 하자, 공판을 앞두고 돌연 태도를 바꿔 죄를 반성한다며 자필 '반성문'을 제출한 겁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반성문을 쓸 이유도 없죠?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거나, 감형을 노리고 태도를 바꿨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형사사건 재판에 제출되는 반성문은, 실제로 피고의 형량을 낮추는 데 꽤 효과가 있습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이 대표적이죠.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은 2심에서만 무려 26차례, 1심에서는 16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반성문을 써냈습니다. 그 결과 1심에서의 사형 선고가 그 뒤 항소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바뀌었죠. 1심은 반성문이 위선이라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반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른바 '교화 가능성'을 인정한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성문 쓰는 법을 알려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필까지 해주는 법률사무소도 생겨났습니다. 수고비를 주면 매뉴얼대로 조언도 해주고 감형을 위한 '가짜 반성문'도 만들어 주는 거죠.
반성문이 없더라도, 형편만 어려워도 감형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학원에서 여중생과 수십 차례 끔찍한 성관계를 한 학원장에게 이틀 전 법원이 내린 벌은 고작 집행유예5년. 기혼에, 자녀가 있어서 가족부양이 어렵다는 게 선처의 이유였습니다.
사람을 죽였지만 반성하니까 감형이 되고, 미성년자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선처가 되다니, 반성문을 백 번 쓴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날까요, 피의자가 형편이 어렵다고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줄어들까요. 도대체 법이 피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피의자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헛갈리지요.
이제라도 재판부는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감형 사유를 한 번 더 면밀하게 들여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반성문 외에 피고인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는 게 현실이라지만, 선처를 호소하는 '악어들의 눈물'에 정작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건 피해자들, 유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