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70·사법연수원 2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한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자택에 보관 중인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검찰에 직접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혹 사건의 정점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USB가 의혹을 풀 기폭제가 될지 증거 가치가 없는 '깡통'일지 주목된다.
복수의 양 전 대법원장 측 관계자들은 "영장에 자택이 적시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한다는 취지에서 사실상 자택 압수수색을 허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1일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전날 양 전 대법원장 자택 서재에 보관돼 있던 USB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압수수색에 참여한 변호인으로부터 퇴직 당시 가지고 나온 USB가 서재에 보관돼 있다는 진술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또 "참여인 등의 진술 등에 의해 압수할 물건이 다른 장소에 보관돼 있다는 게 확인될 경우 그 보관장소를 압수수색 할 수 있도록 영장에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개인 소유 차량에 대해서만 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법원은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고 증거 자료가 (자택에)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고 한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부터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직 시절 사용한 PC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데이터 삭제) 돼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다.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 안팎에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범죄 소명이 일정 부분 이뤄졌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USB 등을 포함한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추가 압수수색 여부와 직접 조사 시기 및 방식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제 막 강제 수사에 착수했고 조사 분량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확보한 양 전 대법원장의 USB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근들 사이에선 "USB 안에 특별한 내용이 없어서 양 전 대법원장이 기꺼이 검찰에 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 영장의 압수 대상에 '자택'이 명시적으로 기재된 게 아니어서 재판이 진행될 경우 증거 능력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영장에 기재된 장소가 양 전 원장의 차량이었기 때문에 차량이 아닌 자택에서 확보한 물증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전·현직 법관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임의 제출 형식으로 USB를 제출했다고 해도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과 부담 등을 못 이겨 자료를 제출한 것이어서 나중에 법정에서 증거 능력에 대한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압수수색"이라는 입장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압수수색을 당하는 당사자가 증거물의 소재지를 직접 말하고 이에 대한 압수를 동의했기 때문에 이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재판과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를 받고
[송광섭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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