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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 국제 아트페어에서 최연소 작가로 참여한 박지성 사진작가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그는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위해 현지인들도 발을 들이지 않는 곳에 겁 없이 올라갔도 했고 파병을 갔다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찍기 위해 눈 덮인 언덕에 올라갔다 거센 바람에 날아가는 일도 겪었다. 지나가다 길거리에 핀 꽃이 예쁘거나 하늘이 아름다우면 사진을 찍는다는 그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을 담는 게 좋아 사진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수상 했던 수많은 상들을 보면 실력이 출중할 것 같다"라는 말에 그는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조금 있을 뿐이다"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대학생인 그의 취미에 대한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 '사진에 미친' 박지성 작가를 지난 7일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에 위치한 한 전시회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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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롯데호텔과의 컬래버레이션 사진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고등학생 때 집에 카메라가 한 대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카메라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작동법을 몰랐고 호기심이 생겼었다. 모 대학교 공대에 입학하고 혼자 막연히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기 위해 사진동아리에 들어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동아리에 오래 있다 보니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사진을 찍게 됐다.
ㅡ 언뜻 보면 공대와 사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진은 감성적인 작업이고 공대는 이성을 요하기 때문에 안 어울리기는 한다. 나는 문과 성향이 강해서 전공을 공부할 때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나를 사진의 매력에 더 빠지게 만든 것 같다. 물론 전공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도 하고 있지만 공부를 하다 보면 삶이 지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사진은 나에게 활력을 가져다준다. 취미를 갖는 건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이 완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게 필요한데 그게 나한테는 사진이다. 전공에 시달리면서 취미도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데, 취미는 전공과 상관없이 내 성향에 맞게 정하면 되는 것 같다. 전공을 살린 취미를 가지면 경쟁력이 생기긴 하지만 내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마치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지는 못해도 어울리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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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ㅡ 본격적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
▷군 복무 중 호국미술대전에 사진을 출품했는데 육군 참모총장 상을 받았다. 그 이후로 각종 공모전에 나가 수상을 하면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됐다. 신한카드 사진전과 제주국제사진 공모전, 극지사진 공모전이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최근에는 개인전을 열면서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ㅡ 가장 기억에 남는 수상작은 무엇인가.
▷제주국제사진 공모전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품을 하기 위해 5일간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무려 4일 동안 비가 왔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여행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 드라이브나 하자하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순간 비가 그치더니 쌍무지개가 크게 생겼다. 그 순간을 포착해 출품을 하고 수상을 했다. 우연이 만들어준 선물을 받았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법한 내 제주 여행에 강렬한 인상과 아름다운 추억이 남은 것 같아 가장 인상 깊었던 공모전 수상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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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국제사진 공모전 수상작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처음에는 작가 호칭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면서 4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고 그들에게는 내가 '작가'기 때문에 내 사진과 나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됐다. 작가는 촬영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미지로 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나 또한 신경을 쓰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작가라는 호칭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로서 내 생각을 이미지로 구축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들이나 투자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이 힘들었다면 힘들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ㅡ 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은 어떤 사진들인가.
▷풍경사진 두 장과 인물사진 두 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풍경사진으로는 에펠탑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인데, 같은 피사체를 찍어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에펠탑 불꽃놀이를 찍고 싶어 철저히 준비해 갔었는데 준비한 만큼 예쁘게 사진이 잘 나왔다. 다른 한 장은 완전히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불꽃을 어디서 찍으면 좋을지 고민하며 주변 고지대를 탐사하다가 우연히 찾게 된 공원에서 에펠탑 위에 채운(무지개 빛깔의 구름)이 떠있는 것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우연에 의한 사진과 의도한 사진은 희열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두 사진을 다 좋아하고 아낀다. 그저 애착의 종류가 다르다 생각한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주로 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화 시킨다. 그 이미지를 통해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즐긴다. 대표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사람의 감정을 잘 버무려 이미지화 시킨 중에 '꽃이 진다고 해서 그대를 잊은 적 없다'와 수중 촬영의 기억이 있는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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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레바논 종교 분쟁지역에 파병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인생의 목표가 세계일주기 때문에 준 전쟁지역이자 여행 금지 국가인 레바논을 군인의 신분으로라도 다녀와야겠다 생각했었다. 물론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지만 설득을 통해 결국 파병을 갔다. 레바논에서도 사진을 찍었는데 하루는 전투기 소리가 들리더니 부대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대피 신호가 떨어졌다. 적 공군의 공습경보여서 방공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간부의 명령으로 유서를 쓰게 됐는데 단 한마디도 쓰지 못하겠더라.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였다. 그 뒤로 '기왕 사는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가 내 좌우명처럼 됐다. 귀국 후에는 파병에서 생명수당으로 번 돈으로 카메라도 바꾸고 유럽 여행도 가면서 사진을 조금 더 열심히 찍고 전시도 하게 됐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로 바뀐 것 같다.
ㅡ 박지성이라는 사람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
▷당근과 채찍이다. 사진을 통해 힘든 삶을 치유 받기도 하면서 삶의 원동력과 자극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을 다시 보다 보면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볼 수도 있고 성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뷰파인더를 통해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 내기도 하고, 나의 감정에 가까운 장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게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원을 순간으로 남기는 희열은 사진을 찍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런 희열이 내 삶에서 없어서 안 될 비타민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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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박지성 작가] |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는 게 여러 목표중 하나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긍정적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 사진을 보고 여
[디지털뉴스국 채민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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